0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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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교수가 바라본 ‘도올-한기총 신학논쟁’

한겨레 신문 기사

도올은 기독교인들이 거대한 압력단체를 만들려 한다며 기독교의 정치 참여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는 진보 쪽이 70~80년대에 참여한 것은 로맨스고 우리가 하면 불륜이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70~80년대엔 약자들을 아무도 대변하지 않았다.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비상한 상황이 끝나면 종교인들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논공행상에 참여했다. 그것은 옳지 못하다. 또 우파들은 안보를 위해 한-미 동맹이나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등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며 강자에게만 동조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 이데올로기이지 성서의 정신이 아니다.

- 도올이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구약의 야훼는 수없이 사람을 죽이고, 질투하고 화낸다. 예수가 신약에서 ‘아버지’라고 한 분과 구약의 야훼가 같은 분인가. 이런 질문이 신학계에서 있어 왔는가?

당연히 있었다. 도올이 질타하는 것은 오직 유대민족만을 위해 타민족을 죽이는 부족신 개념에 대한 맹신일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자들은 ‘야훼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 수없이 얘기했다. 자식 열둘 가진 부모가 있다고 치자. 정상적인 부모라면 가진 것도 없고, 장애를 가진 자식에게 가장 마음이 쓰이게 마련이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애급의 노예로 끌려가 그토록 고초를 받을 때 그들을 긍휼히 여긴 것이다. 그들만이 특별해서가 아닌 것이다.

- 그래도 신의 편벽한 모습이 성서에 비침으로써 반목과 전쟁의 역사를 부채질한 것이 아닌가?

구약도 솔로몬과 다윗 등 왕권이 성립된 뒤 편집된 것이다. 제왕 전승이 자리를 잡으면서 그런 제왕적 모습을 부각시켰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그러나 오늘날도 야훼의 전지전능성, 제왕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게 현실 아닌가?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도 야훼야말로 진짜 신이니, 환웅, 환인, 제석신,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등 다른 신을 모두 쫓아내고 이 땅을 야훼가 제패하는 것처럼 묘사한 게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가 하나님의 종교로서 선교 사명을 갖고 있다는 정치 메시아니즘도 구약을 밑바닥에 깔고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것으로, 그런 잘못된 신관(神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야훼는 어떤 신인가?

야훼는 제왕적 신이 아니다. 야훼란 말의 뿌리를 추적해 보면 ‘긍휼히 여기는 모성적 고통, 산고의 진통에 동참하는 이’다. 한반도의 초기 백성들이 교리적 도그마가 아니라 아무런 선입관 없이 성경을 읽다 보니 어렴풋이 그런 어머니 같은 하나님이 느껴져서 마음속으로 공감해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은 것이다.

-제왕처럼 하늘 위에 앉아 지배하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인가?

섬김과 봉사를 통해 정의와 평등을 이루는 분이다. 일제나 미국 극우주의자들처럼 침략하고 세상을 제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견강부회하며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메시아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관이다.

-도올이 예수와 한반도 초기 올곧은 기독교인들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이라면, 보수 기독교가 왜 이처럼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신관이 중요하다. 신관이 바뀌지 않으면 기독교가 바뀌지 않고 세상이 바뀌지 못한다. 그래서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로 인해 기존의 신관과 교권이 흔들리는 데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교회를 파괴하려는 음모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정치적 우파들과 결속하는 것에 대한 방해라고 여긴다. 약자와 함께하고 그들을 섬김으로써 예수의 사랑을 실현하려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정치적 메시아주의’를 통해 세상적 힘을 갖기를 원한다. 그래서 젊은 지성인들이 도올의 강의를 듣고 깨어나서 ‘정치적 메시아주의’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한기총 이용규 회장과 최희범 총무는 기자들과 만나 ‘철학자가 성서를 해석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철학과 신학은 같지 않다. 그러나 지성과 이성을 배제한 신학은 없다. 초자연적 신을 얘기하는 보수적 신학도 교리들을 보면 대단히 논리와 합리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신이나 구원도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계시적 진리다, 영이다, 신앙이다’라며 신성의 보자기로 감싸는 ‘경계 침해의 논리’는 교권 보호를 위해 상대를 침묵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카르 바르트는 “신학도 인간이 하는 학문적 시도”라고 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계시된 신학이란 없다는 얘기다.

- 그들은 ‘신앙은 신앙의 눈으로 봐야 열리지 지식과 과학으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신앙=반지성주의’로 몰고 가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인가. 그것은 몽매주의다. 상당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도들을 그런 교권주의와 권위로 다스려 전근대적 복종의 미덕만을 강조해 오면서 무지한 맹신이 진짜 신앙인 양 호도했다.

- 기독교에서 도올의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는가?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한다. 낡은 부대는 신축성과 유연성이 없어서 새로운 것을 담아내기 어렵다. 담으면 터져버려서 술도 상하고 부대도 상한다. 한국 기독교는 과연 어떤 부대인가.


김경재 명예교수는 김재준·함석헌·서남동·문익환·안병무·강원용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가르쳤던 한신대에서 신학대학원장과 학술원장을 지냈고, 강원용 목사에 이어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도 맡았다. 한신대 재직 시절 후배들의 총장 추대를 거절한 채 기숙사 사감을 자처해 정년을 맞은 뒤 서울 신촌 이화여대 후문 ‘김옥길 기념관’ 지하의 ‘삭개오작은교회’에서 매주 일요일 소박한 목회를 하기도 하는 그다운 ‘폭’이었다.

  • “어떤 맥락인지 들어봐야 하겠지만 구약을 폐기하라고 했다면 이는 잘못”그리스철학에 뿌리를 둔 헬레니즘과 히브리사상이 만나면서 신약의 정신세계가 형성됐는데, 구약을 제거해버리면 도올이 소중히 여기는 인간 평등과 존엄성 등을 담은 헤브라이즘이 빠져버린다는 것이다.예수 이후 최고의 인물로 꼽히는 사도 바울도 히브리사람이긴 하지만 헬레니즘적 배경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아 용어와 내용에 두 요소가 함께 포함돼 있다고 한다.
  • “구약을 빼면 율법주의에선 자유로울지 몰라도 기독교답게 하는 (헤브라이즘) 정신이 약해져버린다”고 경계했다. 그는 또 “구약과 신약은 서로를 비춰주는 빛”
  • “기독교가 이스라엘에서 탄생했는데, 그 뿌리를 제거해버리면 기독교가 천박해진다”
  • 노자와 불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서양철학 등을 섭렵한 도올이 〈요한복음 강해〉에서 ‘초월적 인격신’을 믿는다고 신앙 고백을 한 것을 보고 놀랐다”
  • "기독교에선 어떤 교리를 믿어야 정통이 아니라, 그런 신앙을 ‘정통’으로 본다”
  • “서양 선교사들의 말을 그대로 답습한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유영모, 함석헌 선생의 맥이 도올에까지 가 닿았다”
  • “루터와 칼뱅도 성서 해석을 바로 함으로써 새로운 기독교를 열었다”며 도올이 한국 기독교의 루터와 칼뱅이 될 수 있다고 점쳤다.
글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싱가포르의 이색 도서관을 가다

기사원문


싱가포르 서쪽에 있는 주롱도서관은 세 곳의 지역 도서관 중 가장 큰 곳으로, 장서량이 45만권에 이른다. 이 도서관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청소년 서비스이다. 엄마 손을 잡고 따라다니던 어린이 때와는 달리 컴퓨터 게임, 스포츠, 음악 등에 빠져 책과는 슬슬 거리가 멀어지는 연령층이기에 궤도에서 멀리 이탈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이벤트를 모색한다.

사색이 샘솟는 청소년 ‘해방구’

도서관의 한 층이 온전히 청소년만을 위한 서가인데, 이름이 ‘버징-올-틴스’(verging-all-teens)이다. 벽 한편에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커다란 보드가 걸려 있다. 짧은 독후감이나 심경을 담은 메모지가 나부낀다.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진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마음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마당이다. 독서모임이나 동아리들의 공동작업을 위한 별도 회의실까지 있다.

사서가 아무리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한다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는 법. 그래서 사서도 학생들이 맡고 있다. 물로 정식사서의 지도를 받는다. 또래끼리 유행하는 트렌드를 잘 알기에 어떤 책을 요구하는지 한번에 ‘딱’ 알아챈다. 또 사서친구가 권하는 책에 신뢰도 더 높은 편이다.

오아시스’라는 코너도 눈길을 끈다. 학교 수업이 있는 평일 오전이라 도서관에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 코너에는 남자 아이 두 명이 서로 비스듬하게 누워 편한 자세로 책을 보고 있었다. 오아시스에서는 누구의 간섭 없이 가장 편한 자세로 바닥에서 책을 보거나 사색에 잠길 수 있다. 사회적으로 억눌린 청소년들에게는 한마디로 ‘해방구’이다. 이 오아시스의 또 다른 샘은 자판기이다. 음료수는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다. 한평 정도의 샘을 통해 청소년들이 더 큰 호흡을 할 수 있어서인지 인기만점의 공간이 됐다.


가장 아래층에 있는 어린이도서관에는 보호자가 동화책을 소리내어 읽어주는 곳이 따로 있었다. 곳곳엔 ‘ASK’(물어보세요)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책을 읽으며 모르는 내용이나 이어지는 ‘왜?’의 질문 보따리를 꽁꽁 묶어두지 않고 이곳에서 풀어놓게 한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서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정기적인 구연동화 발표회 등을 위한 무대도 눈에 띄었다.

싱가포르는 주민들은 보통 때는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공공도서관이나 어린이도서관을 이용한다. 좀더 많은 자료를 찾기 위해 지역도서관을 이용하는데 반납은 어느 도서관에서든지 가능하다. 크리스 림 슈 주 주롱도서관 매니저는 “책 반납 때문에 빌리는 것을 꺼려하지 않도록 대여시스템을 일원화했다. 전자태그(전자꼬리표)를 설치하고 우정국과 제휴를 해서 수거한 도서를 소속 도서관으로 24시간 안에 돌려보낸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찾아간다

이른바 틈새 도서관으로, 쇼핑몰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그것도 도심 오차드거리 한복판의 가장 큰 다카시마야 백화점 5층에 도서관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금싸라기 땅에 도서관이라니. 이름만 도서관이고 백화점 따라온 남편들이나 쇼핑에 지쳐 잠시 쉬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간이 휴게실 정도라고 생각하고 찾았는데 웬걸? 소장하고 있는 책이 15만권이나 된다. 백화점에 아이들을 데려와 이 곳에 맡겨 놓고 쇼핑하러 가겠다는 생각은 포기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출입 금지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조용히 책 읽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란다. 대신 음악과 차를 마시는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세렌느 로 싱가포르 국립도서관 홍보관은 백화점의 도서관 유치가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백화점의 오차드도서관은 9개월 동안의 준비를 거쳐 1995년에 문을 열었다. 예산안을 재무부에서 승인해줘 가능했다. 처음에는 백화점에 쇼핑하러 왔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갔으나 책 보러 온 김에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숫자가 늘어나 쇼핑몰에서도 반기게 됐다.” 지금은 쇼핑몰들의 유치전략까지 겹쳐 10개로 늘었다.

또다른 틈새 도서관으로는 공연장 도서관이 있다. 에스플러네이드라는 공연장 3층에 있는 이 도서관은 예술 관련 도서들로만 한정되어 있다. 공연장에 오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어 음악, 영화, 무용 관련 도서로 서가를 빼곡이 채웠다.

“산모들 출산준비물에 독서목록 첨부”

“어느날 갑자기 어른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책읽기가 몸에 배도록 훈련시키는 게 중요하다.”

파티마 술라이만 싱가포르 국립도서관 선임 행정관은 성인들을 도서관으로 이끄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조기 독서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아이 때부터가 아니라 엄마가 임신하는 순간부터 한 생명의 책읽기 캠페인이 시작된다. 술라이만은 “산모들의 출산준비물에 도서목록도 첨부된다”고 밝혔다. 그 뒤를 이어 유아, 어린이, 청소년 등 나이에 맞는 적절한 책읽기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성인을 위한 독서 캠페인도 물론 있다. 택시기사, 미용사 등 직업별로 독서클럽을 조직해, 각각의 수준과 흥미도에 맞춘 책을 선정해 함께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독서프로그램의 이름이 ‘리드! 싱가포르’인데, 지적 자산을 국민이 공유할 수 있도록 도서관이 적극 앞장서고 있다.

술라이만은 도서관들의 책 구입에 대해 “선정위원회에서 싱가포르 안에 있는 모든 도서관들이 작성한 필요 목록을 검토한 뒤 국립도서관 차원에서 한꺼번에 구입한다. 언어도 인구 구성에 맞추는데 영어책 70%, 중국어책 25%, 타밀어책 5%선으로 안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일반인들이 추천한 도서도 검토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는 “싱가포르가 가장 우선시 하는 민족화합을 방해하는 책들은 제외된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도서관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이에 대해 술라이만은 “도서관은 시민 것이다. 시민들이 도서관을 지키고 관리하는 데 적극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지적했다.

싱가포르/문현숙 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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