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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폐합 위기 전교생 23명 정읍 수곡초교 --- 한겨레신문 6월 18일 기사

전북 정읍시 칠보면 수곡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3명이다. 학생들은 학교에 ‘다닌다’기보다 아예 학교에서 ‘산다’. 이른 아침에 학교에 와서 해가 져야 집으로 돌아간다. ‘놀토’(체험학습 토요일)에도 학교에 오고, 방학 때는 도시락까지 싸들고 학교에 온다. 학교가 얼마나 재밌기에 쉬는 날에도 학생들이 몰려드는 걸까?

지난 12일 오후 수업 때 학교 뒷뜰 텃밭에서 잡초를 뽑던 4~5학년 아이들은 ‘학교 오는 게 재밌냐’고 묻자 앞다퉈 학교 자랑을 한다. 6학년 장은수(12)군이 감자를 캐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 환호성을 지른다. “선생님 지금 감자 캐먹으면 안돼요?”

이 학교에도 ‘0교시’에 ‘방과후 학교’, 이른바 ‘치맛바람’까지 있다.

들에 일하러 가는 부모를 따라 일찍 등교한 학생들은 오전 8시부터 교감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는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이동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다.

선생님은 4명뿐이다. 2학년과 4학년은 따로, 1·3학년과 5·6학년이 한 교실에서 함께 수업한다. ‘복식수업’이지만 한 반에 학생이 네댓명이니까 선생님과 아이들이 충분히 묻고 답할 수 있다. 점심 때는 줄을 서 기다리거나 혼잡한 식당에서 허겁지겁 먹을 필요가 없다. 대량으로 찐 푸석한 밥이 아니라, 잡곡을 섞어 압력밥솥에 지은 윤기 흐르는 밥이다. 텃밭에서 상추를 뜯어다 먹기도 한다. 그러고 나선 삼삼오오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틈틈이 게이트볼 연습도 한다. 지난해 전국게이트볼대회 초등학생 부문에서 8강에 올랐다. 마을 노인들과 게이트볼 경기를 펼쳐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받는다.

방과후엔 천자문을 척척 읽어내고, 다도와 한국화도 꾸준히 배운다. ‘놀토’에도 선생님들과 함께 산에 오르거나 가까운 유적지를 찾아다닌다. 전주나 서울에서 열리는 갖가지 박람회에도 부지런히 다닌다. 토요일 발명교실 때에는 한 학부모가 감자를 쪄 와서 나눠먹었다. 이렇게 놀토 때나 방과후 학교에 학부모들이 간식을 챙겨오는 게 이곳의 ‘치맛바람’이다. 학부모들이 손수 농사지은 고사리며 곶감을 선생님들에게 싸 주는 게 촌지라면 ‘촌지’다.

교육부는 2009년까지 학생 수 60명 이하 학교부터 676곳을 통폐합하겠다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 계획’을 발표했다. 농어촌 전체 학교의 33%가 그 대상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이 학교도 그 가운데 한 곳이다.



이여상(58) 교장은 “학생 숫자가 적다고 학교 문을 닫는 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작은 학교들이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아울러 학교를 통해 마을 공동체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6학년생의 학부모 김용고(40·칠보면 단곡리)씨는 “자연과 친하게 지내며 인성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여서 만족한다”며 “학교를 없애는 건 마을에 사형선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2001년 이 학교가 폐교 대상에 들었을 때 주민들이 똘똘 뭉쳐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상명(12)·상기(10)·수연(9)·수진(8) 네 남매는 30분씩 걸어 학교에 다니지만, 스쿨버스를 타고 큰 학교에 가는 건 싫다고 했다. 아이들은 “비 오는 날이 오히려 더 좋다”고 했다. 비가 오면 선생님들이 차로 집까지 태워다 주기 때문이란다.

정읍/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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