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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ha (토론 | 기여)님의 2007년 2월 23일 (금) 15:0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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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학교 “하나 더 낳아서 보낼까봐요”


완주 삼우초교의 희망 만들기

1999년,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 일이 났습니다. 이 마을의 삼기초등학교와 고산서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모자라 머지않아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인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학교가 없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은 떠올릴 수도 없었습니다.

2001년 11월 두 학교는 학부모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두 학교를 통합하기로 했습니다. 한 학교라도 살리기 위해서지요. 그럼 어느 학교를 없앨 것인가. 여태권, 구윤회 두 학교 운영위원장이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학생 수가 적은 학교가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삼기’의 학생 수는 27명, ‘고산서’는 40여명이었습니다. 한 학교는 사라졌지만 이 마을에 학교는 살아남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삼기’의 삼과 ‘고산서’가 있는 어우리의 우자를 따서 삼우라 이름지었습니다.

그 무렵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교사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이 존중되는 학교를 꿈꾸던 선생님들이 교과 모임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농촌의 작은 학교에 함께 가서 농촌학교의 희망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여러 선생님들이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학교가 좋을까. 그때 고산면 마을 사람들이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2002년 송수갑 선생님이 먼저 ‘고산서’로 옮겨 가 준비작업을 시작했고, 2004년 나영성, 염시열, 이현근 선생님이 통합되어 새로 문을 연 ‘삼우’에 결합했습니다.

농촌의 작은 학교에 희망을 심겠다는 선생님들의 생각에 주위에서도 힘을 보탰습니다. 고산서초등학교 이기승 교장, 김나미 당시 완주군 교육장 등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선생님들은 ‘삼우’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삼우’를 농촌 학교의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 자주 머리를 맞댔습니다. 힘도 모았습니다. 이들은 새로 만든 학교이니만치 학교 건물부터 새로 짓고 싶었습니다. 통폐합 대상 학교로 지정되면서 몇 해 동안 관리 예산이 나오지 않아 학교 건물 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신축 예산을 얻기 위해 교육청을 비롯해 유관기관을 찾아다녔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송 선생님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읽고 김태식 당시 완주군 지역구 국회의원이 교육부로부터 특별교부금 8억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종잣돈이 마련되자 김나미 당시 완주군 교육장은 “모험과 같은 결정이지만 선생님들의 훌륭한 뜻을 돕고 싶다”며 모두 29억원에 이르는 학교 건축 예산을 짰고 2003년 도교육청이 이를 확정했습니다. 건물을 짓는 동안 김수경 완주군 교육장은 컴퓨터실 등 학습 시설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3일 새로 지은 건물로 이사를 마친 ‘삼우’에서 단오맞이 한마당이 열렸습니다. 행사에 참여한 남한산초등학교 서길원 교사는 “삼우초등학교는 통폐합 위기에 처한 농촌학교를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 공교육 안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이 눈여겨봐야 할 교과서”라며 “교육계는 물론 우리 사회 모두가 주목해야 할 학교”라고 평가했습니다.


삼우초교 ‘별난’ 교사들

4일 아침 8시10분께 송수갑 교사가 2층 교무실로 올라왔다. 완주교육장배 초등학교 축구시합 결승전이 비 때문에 오전으로 당겨졌는데 수업 대신 응원을 가자는 제안이었다. 전태찬 교장은 “결승 경기이고,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 선생님들은 수업일수가 빠지게 되니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토론이 시작됐다. 아이들이 모두 가려면 학교 차가 두 번 왕복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차로 30분 가량 가야 하기 때문에 두 번째 차가 도착할 즈음이면 전후반 20분씩 하는 경기가 모두 끝났을 것이다, 비가 와서 저학년은 감기에 걸릴 수가 있다 등등. 결국 4·5·6학년은 응원을 가고 1·2·3학년은 수업을 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처럼 ‘삼우’는 모든 일을 회의를 통해 교직원의 뜻을 모아 결정한다. 교장이나 교감도 의견을 낼 뿐 지시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자연사랑, 인간사랑, 문화사랑이라는 교육 목표도 교사들의 토론을 통해 만들어졌다. 송수갑 교사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교사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이끌어 내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삼우’의 또 다른 특징은 교사들의 열정이다. 이는 다양한 수업 형태에서 드러난다. 교실 안팎을 넘나들고 체험을 중시하는 수업은 대안학교와 비슷하다. 4학년 담임 염시열 교사는 “선생님들 모두 많게는 수십 가지의 수업 형태를 연구해서 쓰고 있다”고 전했다. 교사들은 체험학습에 드는 품을 아끼지 않는다. 6학년 담임 조형운 교사는 “도시에선 말로 설명할 뿐인 내용도 여기서는 아이들이 몸으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올해 초부터 1주일에 한번씩 교장, 교감과 시간이 되는 다른 교사들까지 참관하는 공개수업도 시작했다. 서로 격려하고 자극도 받기 위함이다.

'삼우’ 교사들은 이름 대신 별명으로 통한다. 이룸 샘(이현근 교사), 새멀 샘(송수갑), 나남뜸 샘(나영성), 염통 샘(염시열), 하늘 샘(강한나), 다솜뜸 샘(조형운) 등. 아이들이 부르기 쉬우라고 바꿨다. 덕분에 연구부장 선생님, 체육부장 선생님 등 관료적인 호칭이 사라져 교사들 사이도 한층 가까워졌다.

교사들의 아이들 사랑도 유별나다. ‘삼우’ 교사들은 학부모들과 아이들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특히 결손가정 아이들이 많아 교사들은 상처받은 제자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데 공을 들인다. 1학년 담임인 이현근 교사는 “절반 가까운 아이들이 결손 가정에서 자라고 있어 늘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방학 때 ‘삼우’에서 열리는 계절학교에 자원봉사로 참여해 미술을 가르쳤던 추계예술대 정원철 교수는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선생님들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들은 허드렛일도 많이 한다. 학교를 새로 지었지만 비품을 다 새로 살 돈이 없어 교사들은 선거 공휴일인 지난달 31일 전주시내로 나가 중고 컴퓨터 책상을 구해 싣고 왔고, 옛 학교에서 쓰던 탁자 등 비품에 페인트칠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지난 3일 삼우초교에서 열린 단오 행사 때도 아이들 챙기기는 물론이고 행사 진행, 외부 손님 안내, 물품 조달까지 교사들이 도맡았다.

14일 점심때 교무실에 ‘삼우’ 아이들이 축구대회에서 우승했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교사들은 학교 건물을 새로 짓느라 연습 한 번 제대로 못한 아이들이 우승을 한 것이 대견하기만 하다.

이날 오전 수업 때 나영성 교사는 아이들에게 언니들이 어떤 마음으로 축구를 하고 왔으면 좋겠느냐고 돌아가며 한마디씩 해보라고 시켰다. 아이들의 답은 “가뿐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 “신나게”, “가볍게” 등이었다. 이겨야 한다는 말은 맨 끝에 앉은 아이로부터 나왔다. 나 교사는 이기는 것보다 경기를 즐겨야 한다고 답하는 아이들이 너무 기특하고 고맙다. 무조건 이기기보다 경기를 즐기라고 가르치는 교사들. ‘삼우’의 선생님들이다.


‘교장샘’은 교정 가꾸고… ‘교감샘’은 공문 도맡고…

13일 오전 8시. 텅 빈 교정을 들어서니 멀리서 작업복에 장화를 신은 사람이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전태찬 교장이다. 교사들은 “자리에 있을 때가 없어 만나기 힘든 분”이라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하지만, 사실은 칭찬이다. 그는 늘 바쁘다. 운동장 고르기 공사를 감독하고, 텃밭에 풀도 뽑고, 아이들 등하굣길도 살핀다. “교사들이 아이들 열심히 잘 가르치도록 도와주는 사람”인 까닭이다.

전 교장은 새 건물을 지은 뒤 교장실과 교무실 집기 구입용 예산 2천만원을 모두 교실용품에 쓰도록 했다. 권위도 없고 예산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학교. 사정을 알면 오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교장으로서 ‘불편한’ 학교에서 다니면서도 그는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 시간 교무실에서는 박동규 교감이 책상 앞에 앉아 공문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공문 처리나 외부 회의 참석 등 행정과 관련된 ‘잡일’은 모두 그의 몫이다. 통학버스 운전기사가 학교 공사 때문에 드나들기가 힘든다고 하자 출근을 1시간 이상 빨리 해 교통정리를 해주는 그다.

5학년 담임 강한나 교사는 “예전 학교에서는 공문 처리, 행사 준비, 회의 참석 등 수업 외의 일에도 시간을 많이 뺏겼다”며 “지금은 아이들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삼우초교의 수업

13일 오전 8시45분. 3학년 담임 나영성 교사가 아이들에게 과학 책을 펴라고 말했지만 한 아이는 스티커 붙이기에 정신이 없다. 그가 슬쩍 축구 이야기를 꺼냈다.

“축구 봤어요? 우리나라가 이겼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아이들이 돌아가며 답한다. “행복했어요.” “날아갈 것 같았어요.” “좋았어요.” 눈들이 반짝인다.

그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들렸다. 과학 시간. 날씨와 생활이 오늘 배움 주제다. “오늘 기온이 얼마인지 알아볼까요?”

아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 안팎에 걸린 4곳의 온도계로 달려가 눈금을 본 뒤 자리로 돌아와 저마다 온도를 말했다. 복도쪽은 23도, 교실 안의 두 곳은 24도, 바깥에 걸린 온도계는 20도였다. 나 교사는 아이들에게 온도를 재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 하도록 했다. “저요, 저요.” 서너 명의 아이들이 손을 든다.

“저는 밖의 온도가 추워서 내려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주어를 빠트리면 나 교사가 “저는”이라고 바로 잡아 준다. “저는 바깥이 왜 20도냐 하면 교실 안은 조금 따뜻하고 밖은 춥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덧붙이겠습니다. 교실 안은 학교가 감싸줘서 그렇습니다.” “빨간 액체는 사람보다 온도에 민감합니다.”

한 아이가 민감이라는 말을 쓰자 나 교사가 “교양있는 말을 썼다”고 칭찬하고 아이들의 박수를 끌어낸다. 아이들은 민감이라는 이라는 말을 되새기는 듯하다.그는 얼마 전 아이들 대부분이 풍부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 그때부터 ‘고급 단어’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 반 학생 10명 가운데 5명이 ‘결손가정’ 아이들로 어려서 돌봄을 받지 못해 또래 아이들보다 기본학습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 나 교사의 고민거리다.


“하나 더 낳아서 보낼까봐요” … 학부모들이 말하는 ‘우리 학교’

3일 열린 단오맞이 행사에 참여한 4명의 학부모들로부터 삼우초등학교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은영 학부모회장은 “중학교 다니는 큰애까지 아이가 셋인데 하나 더 낳아서 유치원부터 8년 동안 이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영(40)/조승미(6학년)·승현(5) 어머니=예전에는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싫어했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해요.

이미라(41)/김영준(6)·영범(유치원) 어머니=친척들이 집에 놀러 와서 하는 말이 우리 아이들이 다르다고 합니다. 어딜 가도 얌전하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거든요.

강성욱(39)/은수(2) 아버지=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관심이 무척 많습니다. 지금은 어떤 시기인데 아이 성장 정도는 이렇고 어떤 게 필요하다고 자세히 일러주세요.

이미라=중3인 큰애가 학교 다닐 때는 아이들이 말투나 행동이 거칠고 욕도 많이 했어요. 지금 영준이와 친구들을 보면 서로 도와주려 애쓰는 게 보여요.

오현주(45)/김근정(5) 어머니=전주에 사는 분이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집을 알아봐 달라고 해요. 우리 아이가 이렇게 좋은 학교에 다니게 될 줄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강성욱=선생님들 일이 정말 많습니다. 이 학교에는 매일 0교시가 있어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신 뒤 수업을 시작하고, 수업을 마친 뒤에도 항상 그날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집니다.

이은영=선생님들이 아이들 가르치는 게 다른 학교와 달라요. 교실 밖 수업이나 체험학습이 특히 많아요. 학습지나 문제집은 아예 쓰지 않고 시험도 거의 없어요.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더라구요.

오현주=맞아요. 선생님들은 문제를 푸는 능력보다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하세요. 큰아이가 올해 이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중학교 1학년입니다.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선생님이 권해서 학원에 다니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아이가 겨울방학 동안 스스로 계획을 세워 공부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결과요? 배치고사에서 2등을 했어요.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게 이렇게 힘이 있구나 하고 느꼈지요.


한겨레신문 06.06.20.기사 권복기 기자 이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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