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703
모스크바서 오래된 메모지들을 정리하다
모스크바로 떠나올 때, 옷가지와 책 몇권 그리고 가져온 것이라곤 모두 종이들이었다. 지난 몇년간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던 종이들은 제멋대로 흩어져 있어서 어떻게 담아 와야 할지도 몰랐다. 그냥 보이는대로 담았다. 주로 수학내용들인데 가끔 취해 갈긴 것들도 끼어있다. 지금은 그리고 영영 별 것 아닌 것들일지도 모른 채, 휘갈겨 써내린 글자들이다. 다른 '별 것들인' 글자들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그것들을 차마 버릴 수 없다. '쓰게 되었을 때'의 나는,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분명 '살아 있었을' 것이다. 날짜와 장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꿈 이야기인지 꿈 한풀을 벗고 나와 쓴 것인지 조차 분명하지 않아.
- 비가 햇살을 적시던 날, 햇살도 비를 데웠다. 시외버스 터미널서 나는 머릴 길게 흐뜨러뜨리고 섰다. 날 보던 너는 가다 말고 섰다. 뒤돌아서서, 하필이면 뒤돌아 보았다. 너는 흔들렸다. 너의 길게 흐뜨러트린 머리는 흔들렸다. 자동차 한대가 네 옆으로 지나갔던 것이다.
- 4월 2? 화요일에서 수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 반달 뜨더니 졌네 / 비구름에 갇혀 졌네 / 그 놈이나 그 년이나 같았는데 / 지고 나니 아쉽네 // 봄은 오다 / 오다 말고 지랄 같고 / 달진 밤 지는 매화 향처럼 / 울다 갈 수나 있을라나.
- 술 먹어도 삐뚤어지지 않아, 글자 숨 죽여도 / 그대 가슴 속 박힌 총알, 그립다 / 납덩이 가슴 소옥 깊이 / 박혀 나올 줄 모르고 / 더 들어갈 수도 / 더 나올 수도 / 없이 흔들흔들 // 계곡 속 낙엽처럼 흔들리고 흔들리다 / 빼도 박도 못하고 / 生 이여, 人生 이여.
- 시란, 그리움의 눈물 / 기다림의 이슬 / 너를 부르고 / 부르다 먼지로 부서져야 / 나는 詩 되었네/ 한 때 한 시 나마.
- 술 먹자 할 때 / 피 맺혔더니 / 눈 감으면 / 빙 비잉 / 나돌아 마침내 / 돌고 도는 사랑이여
- 밤을 수놓은 별은 / 져도 울지 아니하고 / 봄을 피워낸 꽃은 / (백매화 향에 강가의 진달래 떨어) / 셔도 서러워 않는구나, 그렇구나 / 때가 되면 뜨고 / 때가 되면 져서 / 해는 때를 이루었네 // 달은 웃지 않았네 / 단 한 번 도
- 사진 메모 : 보는 마음과 담는 마음, 화가처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냥꾼 처럼 쫓을 것 , 빛과 구도 기다리지 말고 앵들안에 있어라.
- 잡히지 않는다 / 거기도 여기도 없다 / 마음으로 보고 / 수는 / 깊이도 없이 가라앉아 / 점은 / 하늘에 떠오르는 이름들
- 찢어진 종이에 5. 25 라 적혀있다.
- 나는 그랬지요 / 슬픈건 당신인데 운건 나였죠 / 파란 날이 / 그때 가까스로 뜨고만 있었지요 / 아이 ! / 어찌 그대는 / 그리 / 공. 공. 웃기만 했던가요 ?
- 나는 모른다 / '모른다' / 라고 쓰지만 모른다 / 신새벽 그네를 흔드는 바람의 소리를 / 마셔도 취하게 않은 술의 의미를 / 그리고 / 삶의 숨 한자락이 아름답다해도 / 프라하 다리 / 영원하다던 맹서의 목소리를 / 떠남은 길고 / 긴데 / 만남은 짧다고 삶은 손가락질 한다
- 내 책상엔 그대가 그리워하는 별만큼의 별이 / 타다가는 긁어 책상에 겹쳐 떴다 / 모스크바 지하철에 겹친 그 별이 / 너나 나나 두렵긴 두려웠던 그 별이 / 난다 지다 뜨다 지다 하다 만다.
- 세상 어디 그 많고 많은 새벽에서 오늘 밤 나는 하필이면 비틀거리며 신촌도 아니고 강남도 아니고 종로도 아닌 곳에서 취하였다. 그래서 몇 줄 남기기로 했지. 그대의 시는 머냐고 시 없이 우린 과연 산 날이 나 있는 거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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