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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6.226.19 (토론)님의 2007년 10월 6일 (토) 11:23 판 (New page: [http://hani.co.kr/arti/culture/book/240919.html 기사 원문] == <나쁜 사마리아인들> == :: 장하준 지음·이순희 옮김/부키·1만4000원 〈뉴욕타임스〉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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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이순희 옮김/부키·1만4000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는 한국에서도 많이 팔렸다. 그 뒤에 나온 〈세계는 평평하다〉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발전론을 가르치고 있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은 이 신자유주의 전도사 프리드먼을 정면으로 ‘까는 일’부터 시작한다.

1992년 프리드먼은 도요타자동차의 렉서스 공장을 견학한 뒤 신칸센 고속열차에서 자신이 오래 특파원으로 있던 중동분쟁 관련 신문기사를 읽다가 문득 깨닫는다. “세상의 절반은 …세계화 체제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국 경제를 현대화하고 능률화하고 민영화하면서 더 나은 렉서스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나머지 절반※때로는 한 나라의 절반, 때로는 한 사람의 절반※은 누가 어떤 올리브 나무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싸움에 열중해 있다.”

왜 중동이 가난한 자들의 못난 싸움판이 됐는지, 역사에 대한 프리드먼의 색맹 증세는 일단 제쳐놓자. 그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서로 빼앗기에 골몰하는 올리브 나무 세상의 나라들이 렉서스 세상에 가려면 황금 구속복을 입는 수밖에 없는데, 입을 자격은 다음과 같은 선행작업을 할 수 있는 나라한테만 주어진다고 얘기한다. 국영기업의 민영화, 안정된 물가 수준, 정부조직의 규모 감축, 재정 균형, 무역의 자유화, 외국인 투자와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 해제, 외환 자유화, 부정부패의 감소, 연금의 민영화 달성.

지은이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정통적인 견해”인 이 프리드먼식 처방을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이 시작된 1960년대 초에 그대로 수용했더라면 “도요타는 기껏해야 구미 자동차회사의 하위 파트너 노릇을 하고 있거나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라 단언한다. 일본도 칠레·아르헨티나·남아공과 소득수준이 비슷한 3류 산업국가로 남아 그때까지 주요 수출품이던 견직물의 원료가 되는 뽕나무(누에의 먹이)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 싸우고 있을 것이라 말한다. 삼성이나 한국도 마찬가지.

세계가 평평하다거니 평평해야 한다거니 하는 것도 헛소리다. 지은이는 “경기장을 평평하게 해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고 그래야 ‘선진국’들처럼 될 수 있다는 설교는 “역사적 위선”에 무지하거나 그것을 감추는 사악한 짓이다. 오히려 “기울어진 경기장이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한다. 왜냐? 평평한 경기장에서 하는 축구게임은 브라질 국가대표팀과 열한 살짜리 딸아이 친구들이 짠 팀이 맞붙는 것과 같고, 권투로는 중량급의 무하마드 알리가 경량급의 로베르토 듀란과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급수가 전혀 다른 팀들을 동일한 룰 속에서 싸우게 한다고 해서 그 게임이 공정한가? “자유시장이 경제발전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지은이의 대답은 한마디로 “없다”다. 게임이 조금이라도 더 공정해지려면 약자에겐 국가보호와 보조금, 구제조처 같은 어드벤티지를 주는 핸디캡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 말하자면 경기장을 약자가 골을 좀더 잘 넣을 수 있도록 강자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경기장은 그나마 평평하지도 않고 오히려 약자 쪽으로 기울어 있기 십상이다.

1841년 당시 ‘게으르고 도둑질 잘하던’ 후진국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며, 자신들은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을 통해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해 놓고서 다른 나라들한테는 자유무역을 권장하는 영국을 질타했다.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그 진실을 통렬하게 파헤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끈 지은이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좀더 직설적으로 말한다. “오늘날 부자 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가난한 나라의 시장을 장악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경쟁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설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바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다. 그들은 인간 역사가 자유무역과 자유경쟁 시장 덕에 발전해 왔다고 역사를 날조하고는, 자신들이 그것을 선도했다며 약자들에게 따라오라고 강요한다.



이는 마치 여섯 살 난 아이를 하루빨리 직업 전선에 내보내는 것이 뛰어난 적응력을 지닌 강자로 키우는 데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거나 같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나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뇌전문의나 핵물리학자 할 테니 너희는 구두닦이, 행상이나 해라는 얘기다.

지은이의 주장이 보편성과 설득력을 얻는 것은 강자들의 그런 주장이 허구이며 실상은 그와 정반대라는 사실을 역사적 전거를 들어 낱낱이, 구체적으로 폭로해내는 그의 놀라운 공부 내공 덕이다. 그는 영국·미국·일본·독일·프랑스·스위스 등 이른바 성공한 나라들이 얼마나 높은 관세 장벽을 쌓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상표를 도용하고 짝퉁을 만들고, 기술자를 훔쳐내고, 민영화를 거부하고 국가가 강력하게 시장에 개입했는지를 구체적 사실로 입증한다. 강자들은 그래 놓고 자신들을 모방하려는 후발주자들에겐 “절대 안 돼!”를 외친다. “사악한 삼총사”, 곧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과 세계무역기구(WTO)가 그 대변자들이다. 1997년 한국의 ‘아이엠에프 사태’ 때의 처방전이야말로 강자들의 위선과 사악이 그대로 드러난 전형적인 사건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때 개방론자들이 대세를 장악한 한국은 아직도 그 덫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은이는 경제발전에 걸맞은 인종이나 문화 유전자가 따로 있다거나, 공기업은 나쁘고 민영화는 좋다, 외국인 투자 규제는 악이고 자유화가 선이다, 제조업은 한물 갔다, 자본에 국적은 없다는 따위의 신자유주의 공식은 “틀렸다”고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한다. 심지어 지적재산 해적질이나 인플레나 부정부패도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며 그 근거를 제시한다.

신자유주의는 ‘부익부 빈익빈’, ‘강익강 약익약’ 식의 현상고정 방책이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 교역론’도 각국이 현재의 조건들에 만족하는 한은 옳지만 그 현상을 깨고 불리한 조건을 바꿔 나라를 개조하려는 국가들에겐 족쇄일 뿐이다. 과감히 그 족쇄를 깨뜨리고 자기 처지에 맞는 방식대로 힘을 다져간다면 오늘의 자이르나 모잠비크가 2020년이나 2030년에 독일이나 일본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저자와 대화

“이번 책은 대중을 상대로 쓴 것이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개혁의 덫〉도 대중용이라 할 수 있지만, 이번 책은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먹고 썼다. 영화나 역사, 기사 등 흥미로운 소재들을 활용해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198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유학가서 21년째 거기서 공부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는(경제발전론) 장하준(43) 교수는 지난 3일 전화통화에서 그렇게 말하고 덧붙였다. “굳이 따져보자면, 〈사다리 걷어차기〉 때보다는 다룬 범위가 좀더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사다리 …〉 때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국가들이 분석대상이었다면 이번 책은 (자유주의 무역의) 폐해를 의식하지 못하고 진짜 그게 좋다고 믿는 선의의 사람들까지 대상에 포함시켰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그의 아홉 번째 저서. 엮은 책(편서) 8권이 따로 있다. 첫 책 〈산업정책의 정치경제학〉(1994)을 비롯한 9권의 저서 가운데 〈쾌도 …〉(정승일 교수와 공저)와 〈개혁 …〉 두 권을 빼고는 모두 영어서적이다. “주류 경제학과 서구 사회의 위선을 공격한 것이어서 좀 걱정했으나 지금까지 반응은 의외로 괜찮았다.”

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주류 경제학 및 서구 비판에 동기가 됐을 법한 계기라도 있었느냐고 물었다. “처음 동아시아 산업정책을 연구할 때 굉장히 억울하다고 할까, 그런 심정이었다. 서구는 동아시아 개발독재가 자유시장경제였냐 아니냐로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기본적인 사실들을 너무 잘못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잘못은 대충 넘어가면서 약자들의 잘못은 부풀리고, 말하자면 자기들 마음대로 소설을 쓰고 있는 게 너무 많았다.” 그는 대단한 독서가임이 틀림없다. “굉장히 많이 읽고 고민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학풍이 그렇다. 교과서 없이, 말하자면 정본 없이 여러 가지 견해를 읽고 판단하도록 한다. 개인적으로도 읽고 쓰는 일에 호기심이 많다.”

그는 “한국의 성취는 정말 대단한 것”이라며, 국제무대에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는데도 한국이 배가 부르게 되자 ‘사다리 걷어차기’ 편에 가담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우리는 지독한 가난에서부터 발전을 거쳐 잘살게 된 과정을 모두 다 경험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특이한 역사적 경험을 살려 선진국들의 횡포를 말리고 훈계하는 새로운 중재자로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위치인데 그걸 잘 살리지 못하고 미국 등 서구를 따라가거나 맞장구치며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다자간 질서 흐트리기에 가담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고, 시장의 역동성을 중시한다. 개인소득이 연간 7천~8천달러 정도는 돼야 환경이나 생태도 생각할 수준이 된다며 빈국들이 그때까진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유무역·시장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시장주의엔 단호히 반대한다.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신자유주의 사회는 누구도 편히 살 수 없으며 “부자들에게도 오히려 감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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