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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ha (토론 | 기여)님의 2007년 11월 4일 (일) 10:18 판 (→‎오늘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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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기사원문


이스마엘 베아 지음·송은주 옮김/북스코프·9800원

“책에서 일어난 일을 아프리카 사람들이나 하는 이상한 짓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상황에 따라 인간성을 잃을 수 있고, 결국 다시 회복합니다. 그게 바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처럼, 소년병이었던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에라리온 사람들’의 야만성과 폭력성에만 치를 떤다면 책을 쓴 그의 의도를 한참 거스른 것일지도 모른다. 〈집으로 가는 길〉은 열세 살에 이미 마약과 살상에 찌든 ‘전쟁광’이었던 이스마엘 베아가 자신의 경험을 쓴 책이다. 책을 통해 그는 자신이 온몸으로 겪었던 ‘인간’의 폭력성과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에서 내전은 1991년부터 11년 동안 이어졌다. 내전 기간 정부군과 반군 병력의 절반이 8~14살 소년병이었다고 한다. 랩 음악에 흠뻑 빠져 있던 열두 살 소년 이스마엘은 93년 1월의 어느 날, 친구들과 이웃 마을 장기자랑에 나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반군에 쫓긴다.

전쟁을 피해 보려고 죽도록 도망치던 소년들은 정부군의 소년병으로 징집되면서 전쟁의 한가운데로 내몰린다. 총 메고 달리기, 기어가기, 웅크리고 숨기, 1분 만에 밥 먹기, 총 쏘기, 총검으로 바나나 찌르기…. “제일 먼저 배를 쑤시고 다음에는 목, 다음에는 심장을 찌른다. 그리고 심장을 도려내서 그놈에게 보여주고 눈을 파내버리는 거다. 잊지 마라, 너희 부모를 죽인 바로 그놈일지도 모른다.” 훈련을 받는 며칠 동안 정부군은 그들 귀에 못이 박이도록 소리친다. 처음 자동소총을 손에 쥘 때 손을 부들부들 떨던 이스마엘은 첫 전투에서 같은 천막에 있던 어린 소년과 친구가 죽자 분노에 차 방아쇠를 당긴다.

2년 동안 소년은 마을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대신 마리화나를 피우고 화약과 코카인을 섞은 ‘브라운-브라운’을 흡입하면서 초소를 지키는 소년병 생활에 익숙해진다. 마약으로 심신을 마비시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


“우리 분대가 내 가족이었고, 내 총이 나를 먹여 살리고 지켜주었다. 내가 따라야 할 규칙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뿐이었다. … 우리는 2년간 전투를 했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는 살인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어린 시절은 끝나버렸고, 내 심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 그래도 나는 내 삶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96년 1월 이스마엘이 열다섯 살 되는 해에, 소년병들은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전선에서 나와 재활센터로 옮겨진다. 기억의 짐을 진 것도 버겁지만, 기억의 짐을 벗는 것도 이들에게는 힘에 부쳤다.

이스마엘의 긴 이야기는 마을 어른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사냥꾼이 원숭이를 잡으러 숲에 가서 원숭이를 겨누고 쏘려는 순간, 원숭이가 말한다. ‘네가 나를 쏘면 네 어머니가 죽게 될 거야. 쏘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 것이고.’ 너희들이 사냥꾼이라면 어쩔 테냐?” “내가 만약 사냥꾼이라면, 나는 그 원숭이를 쏘겠다. 그래야 다른 사냥꾼들이 다시는 똑같은 일에 처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아이들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대는 어른들이 그의 대답을 들으면 조금은 뜨끔할까?


이스마엘 베아(사진)는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국제 인권감시기구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어린이 인권 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북스코프 제공ⓒJohn Madere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디아스포라의 눈] 한국, 급한 성격 좀 고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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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타는 사람들이 밀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당연히 문쪽에서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게 되고 연약한 사람이나 노약자는 빈 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서울의 버스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며 급정차와 급발진을 되풀이한다. 정류장 승객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차도에 나가서 버스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버스가 오면 아직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승객들이 사방팔방에서 달려든다. 당연히 줄은 흐트러지고 여기서도 연약자나 노약자는 희생자가 된다. 운전수가 문을 닫지도 않고 급발진할 때와 같은 경우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익숙하지 않을 뿐 한국 사람들은 모두 이런 상태에 익숙한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통계상으로는 교통사고 사망자, 그것도 길 위의 보행자가 사망하는 비율은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들었다. 곧 사람 목숨값이 싼 것이다.

일본에 있을 때 한국의 젊은이는 전차나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스스로 자리를 양보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 와 보니 현실은 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다리와 허리가 굽은 할머니나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승차해도 모른 척하고 있는 젊은이가 많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도덕을 주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일찍이 한국에서는 위로부터의 권위주의적인 강제에 의해 경로나 봉사 도덕이 강요됐다. 위로부터의 강제가 약해질 때 젊은이들이 자기주장을 시작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만약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의 강제에 의해서만 그게 가능하다면 스스로 권위주의를 불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인간이란 그토록 한심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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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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