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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ha (토론 | 기여)님의 2007년 12월 11일 (화) 12:57 판 (→‎시대를 규정하는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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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그럴듯한 추론

그럴듯하게 짐작해보기의 다른 형태들

가장 단순한 관계들은 가장 평범하다는 사실에 induction 이 기초하고 있다.

우리는 수학적 성질을 탐구하는데 있어 그럴듯하게 추측해보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았다. 주로

  • 어떤 사실들을 탐구하면서 그것들을 일반화하여 끌어내거나 (inductive)
  • 유사한 것에 비추어 적용해보는 (analogical)

방식의 논의들을 했다. 그런 생각에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 여러 예를 들었다.

이 두 길 말고 또다른 형태의 '짐작하기'도 있을까? 물론이다. 비교적 간단한 사례와 과학사의 기념비적인 사례를 들면서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한다. 먼저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간단한 사례로 시작해보자.

관련 사례로 판단해보기

어떤 문제에 맞닥뜨리면 흔히 해결 방법을 짐작해본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먼저 이 문제는 합리적인가? 생각해볼 것이고,

  • 문제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만큼 조건이 충분하게 제시되었나? 부족한가? 아니면 너무 많은가? 혹은 모순적인가?

와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져 본다. 이런 질문들은 헛되이 힘을 낭비하는 것을 줄여주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도록 도와준다. 이런 현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다.

오른쪽 그림을 보라. 반지름이 r 인 공이 있고 그 중앙으로 원기둥이 통과한다고 하자. 원기둥은 중심축에 대칭하고 공과 만나는 두 점의 길이는 h 라고 하자. 우리가 닥친 문제는 이렇다.

원기둥으로 뚫리고 남은 공의 부피 를 찾아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앞의 질문들을 던져볼 것이다. 우리에게 정보가 충분한건지 아닌건지 아니면 불필요하게 많은건지. r 이 공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고, 원기둥과 만난 부분의 높이가 h 이기 때문에 두 정보가 필요하고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는 건 자연스러워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앞의 질문의 답을 찾고 보면 조금은 엉뚱해 보인다.

다시 말해 공의 반지름이 불필요한 과잉정보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말이 안되구나 싶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r 을 고정하고 원기둥과 원이 만나는 높이 가 변한다고 하자. 원기둥이 더 넓어지면 h 는 더 짧아지고 그럴수록 공의 남은부분은 점점 부피감을 잃어버리고 대신 평면에 가까와진다. 원기둥이 좁아지면 반대다. 점점 공 자체의 부피감이 더해질 것이다. 남은 부분의 부피가 h 에 비례적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h 를 고정하고 r 을 바꿔보자. r을 키우보면 그때, 남은 부분은 넓어져서 부피를 늘리려는 작용을 하는데 동시에 깊이를 잃어 부피감이 줄어들게 작용한다. r 을 줄이면? 공의 전체에 가까와지면서 깊이를 더 가져 볼륨감을 늘리지만, 동시에 공자체가 작아져서 부피를 줄이는 요인이 된다. 다시 말해 r 을 변화시키는 것은 남은 부분의 부피가 변하지 않도록 균형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사실 앞의 식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아니다. 놀라운 것은 r 을 변화할 때 부피를 늘리는 요인과 줄이는 요인이 완전히 균형을 이루어 r 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은 부피 였다. 그리고 우리는 형태 크기 를 짐작해보았다.

  • 형태와 크기를 결정하는 필요충분한 조건 은 r 과 h 다.
  • 형태와 크기는 부피를 결정하는데 충분한 조건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조건은 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실제로 우리의 문제에서는 r, h 두 조건 모두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부피' 문제를 풀기 위해 그와 '관련되고 더 눈에 잘보이는 문제'(형태와 크기)를 살펴서 두 문제의 차이를 제거해가면서 '과연 문제에서 제시한 모든 정보가 꼭 필요한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한 것이다.

처음 우리가 위의 식을 보고 '말도 안된다' 고 느끼게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형태와 크기'를 결정하는 요인들은 부피를 결정하는데 꼭 필요한 경우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에서는 그렇지 않은 비범한 경우를 만났기 때문이다.

주어진 문제를 같은 류의 관련된 문제로 바꾸서 풀어보기 는 보통은 충분히 그럴듯한 '대충해보기'(heuristic) 절차를 밟은 괜찮은 방법이다. 다만 이것은 여전히 완전히 믿을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인 경우로부터 판단해보기

아래 사실은 여러개의 변수가 있는 여러개 등식에 대해 우리가 갖는 '보통의 믿음'이다.

알 수 없는 원소가 n 개 있을 때, n 개의 등식이 있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모두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 예를보면 그렇게 알고 있는 것과 충돌하게 된다.

(어떤 유언) " 자식 셋에게 유산을 물려주겠다. 첫째는 남은 두 사람이 얻은 것의 반에다 3000을 더 갖고, 둘째는 다른 두 사람이 얻은 것의 반만 갖고, 세째는 남은 두 사람의 반에서 3000을 빼고 가져라."

라고 하였다면 이 것은 3 개의 등식으로 나타낼 수 있고, 보통은 첫째, 둘째, 세째가 얼마나 물려받게 될 것인지 풀 수 있게 된다. 등식은,

그러나, 이 연립한 세방정식을 연산하면 결국 ,

가 되어 첫째나 둘째나 세째나 얼마를 갖든 상관이 없어지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 대신 등식이 하나 더, 다시 말해 4 번째 등식이 있게 되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들어, '물려줄 재산의 총액은 15000이다.' 라고.

이제 첫째는 7000, 둘째는 5000, 세째는 3000 을 물려 받으면 된다. 이것은 처음 말했던 '보통의 믿음'과 충돌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문제에 맞딱뜨려서 식으로 바꾸어 풀때, 갖는 '그럴 것이다' 라는 믿음을 특수한 예다. 사실 그 보통 믿음은 결코 수학적으로 엄밀한 정리가 아니다. 대체로 그럴 것이고 그래서 대체로 그렇게 믿고 푼다.

하지만 이런 반례는 '대체로 그렇다'라는 것을 의심없이 꼭 믿어야 한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특별히 생각해낸 예일 뿐이다. 어쩌다 한번씩 이런 식의 반례가 나온다고 해서 여러 변수가 있고 등식들이 연달이 있을 때 의심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우편 사고나 교통 사고가 있긴 해도 편지를 부치고 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한 게 더 좋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 단순성은 진리의 보증표시이다" 라고 말했다. 점점 복잡해져가는 세상에서 이 말을 "단순한 것이 진리"라고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단순한 것이 진리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게다가 복잡한 것을 탐구하더라도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보는 자세가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많이 준다. 처음 공과 원기둥의 예에서도 '형태가 변하면 부피도 변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단순하고 보통의 믿음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를 풀기 위해 자연스러운 출발이다. 여러개의 등식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자유낙하 운동을 연구한 갈릴레오의 예를 들어보겠다. 어떤 물체의 낙하 운동을 연구할 때 갈릴레오는 가장 자연스럽고 단순한 것에서 출발했다. 갈릴레오 이전 수천년간 낙하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하는 이 철학 이데올로기는 낙하문제를

" 물체는 도대체 왜 낙하한단 말인가?"

라고 물었다. 그리고 이것을 복잡한 말로 이론을 정립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달랐다.

" 물체는 어떻게 낙하하는 거지?"

이렇게 단순하게 출발했다. 그리곤 어떻게 되나 떨어뜨려보았다.

"왜" 에서 "어떻게"로, "복잡한 말들의 향연"에서 "실험"으로.

이것이 바로 현대 과학의 씨앗이 뿌려지는,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었다.

관찰을 해보면, 아래 열거하는 것들을 모두 분명하다. 이 중 가장 단순한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이 땅에 더 세게 부딪힌다.
  • 더 무거운 것이 땅에 더 깊이 박힌다.
  • 더 멀리 날수록 더 빨리 움직인다.

갈릴레이는 '속도가 거리에 비례한다' 라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다' 고 처음엔 생각했다가 나중엔 '이건 틀렸다. 틀리기만 한게 아니라 불가능하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을 조금 자세히 보자. 갈릴레이 당시는 없던 수학 개념-기술이지만, 우리는 '미분' 개념, 더 정확히 미분 방정식을 이용하기로 한다. s 가 거리, t 가 시간 이라하자. g 가 어떤 상수고, dx/dt 가 시간의 변화에 대한 거리의 변화로 속도의 개념일테다. 그러니 만약 이 속도가 거리에 비례한다고 하면,

고, 이것은 다름아닌,

이고 따라서, c 가 어떤 상수라면,

결국

이 된다. 이건 뭔가? 시작점(t=0)에서는 거리 x도 0 , 따라서 속도도 0 이어야 하는데, 우리의 가정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시작점에서 벌써 c 만큼 움직이고, 속도도 gc 가 되버린다. 말이 안되는 거다.

언뜻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던 것이 말이 안되는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가 시도해볼 것은 "그 다음 자연스러운 것" 을 가정해보아야 할 차례다. 그건, 속도가 '거리'에 비례하는게 아니라, '시간'에 비례 한다는 가정일 것이다. 갈릴레오도 여기에 이르렀다.


시대를 규정하는 배경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그 이전의 '철학적, 신비주의적' 탐구 경향을 과감하게 떨쳐버린 용맹함을 보여 진리를 탐구해들어갔다면, 동시대인이었던 케플러(15711630 )는 그 반대다. 케플러가 쓴 첫저서의 제목만 해도 벌써 그렇다.

우주지도 연구 입문 : 천체 궤도에서의 눈에 띄는 비례에 대한 '우주의 신비'와 다섯개의 정다면체로 증명되는 행성들의 수치와 운동 주기에 관한 참되고 그래야만 하는 수를 담은 우주지도 연구 입문

여기에는 천체 연구가 신학과, 기하학이 점성학과 섞여 있다. 여기서 그는

  • 태양 주위를 도는 왜 행성은 왜 정확히 여섯 개일까?[1]
  • 태양과의 거리, 태양 공전의 주기에 담긴 수들은 무엇을 뜻할까? 다시 말해, 왜 하필 그런 궤도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공모양인 지구가 기준이다. 지구 공전에 접하는 정12면체(dodecaheron)를 둘러싼 공을 그리면 그것이 화성(Mars)의 공전을 나타낸다. 그리고 지구 공전의 안에 둘러싸게 정20면체에(Icosaheron) 접하는 공모양의 공전은 금성(Venus)이다.

이것을 간단히 쓰면 (지구, 외접 정12면체, 화성), (화성, 외접하는 정4면체(tetrahedron), 목성(Jupiter), (목성, 외접 정6면체(cube), 토성(Satrun)); (지구, 둘러싸인 정20면체, 금성), (금성, 둘러싸인 정8면체(octahedron), 수성(Mercury)) 다. 결국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5개의 정다면체와 6개의 공의 시스템으로 천체 구조의 성격을 발견하여 두번째 질문에 답을 내린 것이다! 그는 희열에 들떴다. 그렇다고 거기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을 코페르니쿠스가 실제 관찰한 결과와 비교한다. 어떤 것은 비슷하지만 어떤 것을 차이가 꽤 났다. 이제 자신의 발견을 다듬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 그렇다고 케플러가 믿은 바, '완벽한 것으로서의 공', 플라톤의 말처럼 '가장 고결한 입체'들인 다섯개의 정다면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그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접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케플러의 이런 결과와 합치하지 않는다. 지금의 방식으로 더 많은 관찰 결과들과 천체 주기를 설명할 수학식이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나면 우리들이 믿고 있는 것도 수정되어야 할 지 모른다. '자연스러움'은 결국 시대를 규정하는 그 배경(background)이나 분위기에 종속되는 것이다.

결코 끝나지 않는

이미 앞에서 본 예들에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그럴듯하게 생각할만한 근거가 있어서 짐작하고 나름의 근거를 댄다고 하자. 하지만, 결코 그것은 엄격한 증명이 아니었다. 함부로 믿어버릴 수는 없다. 경계해야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버리거나 전혀 불필요한 것으로 방치할 수는 없다. 어느정도 믿을만한 수준에서 그것을 떠받치는 근거와 연결할 수 있다면 더 그렇다. 어떤 현상을 더 잘 설명한다고 해도, 결국 설명한 그 현상을 설명해야할 것이고 이런 과정은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어쨌든 우리가 그럴듯하다고 믿는 어떤 사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임시로 믿고 있는 것이 언젠가는 완결하게 증명될 수도 있고, 또는 그것이 다른 어떤 사실을 밝히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럴듯하게 추측해보는 거은 여전히 중요하며 마찬가지로 그 추측에 대해 더 정확하게 근거를 밝히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구체적인 어떤 상황에서 고작 일부만 그럴듯한 근거를 갖을 뿐 모든 경우를 다 설명할 수는 없으니, 사실, 우리가 '그럴듯하게 추측해가기'라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도 결코 끝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추측하기의 다른 모든 형태를 완벽하게 정리할 수는 없다.

대충 가정해보기

지금까지 봐왔듯, 모든 것을 다 증명하고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우리의 힘을 소진할 필요가 없다. 만약 문제를 풀다가 막히거나 또는 아직 증명이 안된 어떤 사실을 이용해야할 경우, 그것이 '그걸만하다'는 근거가 있다면, 과감하게 앞으로 전진하라. 그렇게 '보통 그렇게 하듯 대충 가정'한 것을 믿고 써보는 것이 흠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완벽한 진리라고 경솔하게 믿는 것도 흠이다.[2]

조심스러운 낙관주의가 합리적인 태도다.


Note

  1. 케플러는 동시대인들이 '6은 완전수이기 때문이다.' 라는 방식의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식의 질문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2. 이와 연관된 것들로는 리만 가설, 선택 공리 (Axiom of Choice) 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대신 이것들을 쓸 때는 이런 '증명되지않거나 모호한 구석이 남은' 사실을 썼다고 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