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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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에세이집 펴낸 교회건축 전문가 김영섭씨

“사람이 많아 소리가 다 흡수되는 바람에 지금 소리가 엉망이 됐어요. 내가 이렇게 예민해요.”

서울 종로구 자택의 지하에 차린 8평 남짓한 음악실에서 ‘황금 귀’를 가진 건축가 김영섭(58·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음악을 들려주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가 쓴 <오디오의 유산>(한길사) 출간을 기념해 지난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였다. 음악실에는 김 교수가 40년 가까이 ‘궁극의 소리’를 찾아 헤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혼 시절 신혼살림집 한 채 값과 맞바꾼 슈투더 레복스 모니터 스피커 등 40~50년 된 고색창연한 오디오 네 세트와 무엇에 홀린듯 수집해온 음반 만여 장이 빼곡했다.


“오디오는 취미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아 역사를 제대로 다룬 책이 드물더군요. 40년 가까이 오디오를 만져오면서 오디오계의 신화적 존재처럼 됐는데, 숨어 있는 마니아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취미도 심화되면 개인의 일상을 파괴하지요. 먼저 거쳐간 사람이 체계화시켜 놓으면 후배들이 덜 고생하지 않겠나 싶어요. 시중에 나온 오디오 비평에는 부정확한 정보도 많고요.”

<오디오의 유산>은 40년 동안 서양 고전음악과 오디오를 좇으며 김 교수가 거슬러 오른 오디오의 역사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5년 동안 책 500여권을 들춰보며 집필했다고 한다. 교회 건축으로 유명한 그는 교회 음향을 다루며 주로 대형 스피커를 만진다. 그의 직업과 취미가 맞물리는 지점이다.

김 교수는 청소년 시절 클래식 기타를 독학으로 배우고 대학 때는 클래식 기타와 현악사중주 연주단체를 만들 정도로 음악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이름난 교향악단과 수많은 명연주자들의 공연을 접한 기억이 그때의 소리, 더 좋은 소리를 찾으라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젊은 시절 그는 사나흘 꼬박 밤을 새워 투시도를 그려 수입 음반과 오디오 구입 자금을 마련했다.


음악을 사랑할수록 욕심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성악가의 전성기 시절 황금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당시 녹음된 음반을 구해 그 시대 방식으로 소리를 재현하는 것이 방법이었죠.”

그는 좋은 소리를 알아듣는 귀는 좋은 소리를 기억함으로써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소리는 굉장한 문화적 축적이 있어야 합니다. 집단에 소리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야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있지요. 기술만 갖고는 안 됩니다.” 그는 엠피3을 듣는 젊은 세대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들이야말로 인류가 만들었던 최고 음향에 대한 기억 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누군가 계속 기억을 갖고 최고 음향을 만들려고 전력투구하면 그 유전자가 계속 살아갈텐데 말입니다.”

책에는 ‘소리를 싸고 아름답게 내는 방법’도 담겼다.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을 주는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이 세상 어떤 오디오 기기도 나쁜 건 없습니다. 사람들이 구사를 못하는 것일 뿐이지요. 원리를 이해하면 됩니다. 사물의 진정성을 믿는 사람이면 소리의 진정성과도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중한담] ‘일본의 양심’ 마츠우라 주교

다수의 분노와 열정에 동조하기는 쉽다. 반면 모두가 분노해 전제군주처럼 힘을 사용하려 할 때 이를 그만두라고 외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지나면서 일본에서 부활 움직임을 보이는 군국주의에 맞선 평화 운동을 벌이는 마츠우라 고로(56) 주교는 그래서 ‘일본의 양심’으로 꼽힌다.

마츠우라 주교가 평화운동을 함께 하는 오사카 교구의 사제, 수녀, 신자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일본을 찾았다가 그의 활동을 보고 감격한 박기호 신부가 주임으로 있는 예수살이공동체의 초청으로 왔다. 4박5일 일정의 첫날인 7일 서울 정동 품사랑카페에 온 그를 만났다. 깨끗하고 말끔한 외모다. 일본 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마츠우라 주교는 2차 대전 뒤 아예 전쟁을 원천적으로 할 수 없게 명문화한 헌법 9조의 개정 움직임에 맞서 이 평화조항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1991년 걸프전 당시 일본이 미국의 압력으로 ‘국제사회에 공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위대를 파병할 때, 반대운동을 벌이며 평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일본 우익과 정치권에서 ‘자위’라는 명분으로 군사력 증강을 위한 ‘헌법 9조’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1999년엔 ‘9조회 오사카’를 결정했고, 2002년엔 ‘피스(peace) 9’를 창설했다.

“20세기는 전쟁의 시대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을 없앨 수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전쟁 억제를 위한 내용이 국제헌장에 담겼는데, 국제헌장의 그런 정신이 잘 담긴 게 ‘일본 헌법’입니다. 과거 침략전쟁으로 2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민중들에게 큰 희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헌법 9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는 이미 군비 예산이 세계 5위에 이를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일본에서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군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헌법 9조가 폐기된다면 일본의 막강한 첨단 산업 기술이 군사산업에 사용되고, 위협을 느낀 주변국들도 경쟁적으로 군사력 증강에 나서면서 아시아 평화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헌법에서 9조만 사라지면 ‘유사시’라는 구실을 만들어 언제라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가 되는 것이기에 그는 ‘헌법 9조’를 일본과 아시아 평화를 위한 마지노선으로 본다.


일본에선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이 통과돼 3년 안에 국민투표가 실시될 수 있다.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헌법이 개정될 수 있다. 하자만 마츠우라 주교의 ‘피스 9’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9조회’ 등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헌법 9조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애초 70%대였던 헌법 개정 지지율이 요즘은 40%대로 낮아진 상태다.

하지만 우익들이 상황을 반전시킬 때는 러시아와 북방 4개 섬 분쟁이나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 한국과의 독도 분쟁을 이용해 국지전을 먼저 발생시켜 국민들을 자극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이 올 때 일본 국민들의 여론은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자각한 민주시민의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가 만든 ’피스 9’는 3~5명씩이 어울리는 소모임 1600여개로 이뤄져 있다. 이런 소모임은 중앙사무국으로부터 어떤 명령도 받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모이고 자발적으로 활동한다. 개인 또는 소수집단이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우익의 부추김에 언제든 평화를 잃고 호전주의에 동조할 수 있는 민중 심리를 간파한 데 따른 각성운동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 가톨릭 신도는 40여만 명에 불과하지만 이제 어느 성당에서도 헌법 9조 모임이 보편화됐다. 이렇게 그가 뿌린 ‘평화의 씨앗’들이 일본 전역에서 싹을 틔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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