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5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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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평택 대추리에 군경합동작전으로 농민들과 학생, 노동자, 신부들을 밀어내고 정부는 도와준 것도 없을 때 짓고 지키고 살아온 학교를 허물고 포크레인으로 잔해를 퍼담은 날. 그 현장의 역사적 함의를 며칠간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쓸데 없이 자꾸 생각하게 되어 쓰면서 풀어내버리려고 한다.

2006년 5월 31일 내가 서울 시민이라면 나는 강금실 전장관을 위해 표를 던져주어야 하나? 라는 질문을 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이 하는 말과 행동이 세련되었고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 참이라 여겨져 참 기뻤다. 그 분이 서울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사람이고 정치와 시장으로서의 문화에 맑은 물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당선만 되면 그리 되리라. 게다가 그것은 우리 잔혹한 군대식 남성문화가 독이 오를대로 올랐다가 이제서 장년으로 접어들 즈음 ... 그래도 판을 치는 나쁜 뜻에서의 남성적 역사흐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바랐다. 그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현 정권을 당선 시킨 것도 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무책임한 생각까지 했다. 지금도 그 뜻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5월 4일 평택에서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생각을 거듭할 수록 내 집착은 커지기만 하는 것인지, 어떤 식으로건 선거는 정권에 대한 심사의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그렇다면 내가 서울시민이었다면 과연 나는 어느 편에 표를 던져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정권은 모르쇠를 하기는 커녕 한발 더 나아가 엄정대처를 말하고 있다. 신이 들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무역보복에 대한 우려를 들먹이는 식의 극단적 생각은 여기서 일단 내 안의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독히 직선적이고 흑백논리일 뿐이다. 현실 문제는 더 복잡하다.

물론 강금실 전 장관은 열린우리당에 비판적이고 아마 그가 국방부장관을 맡았으면 일처리가 달랐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열린우리당과 놈현은 달랐고 다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이끌어가는 여당을 보라. 이들은 승리에 대한 집착으로 해프닝을 만들어놓고 있고 자신들의 무능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특별한 그 무엇을 바라는 사람처럼 한심하기만 하다. 여당이 구성될 때 부터 이런 작태가 짐작이 영 안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도가 넘어섰다. 정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도대체 왜 그를 뽑았는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사명의식이 없다. 정치인이 사명의식과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모호하다면 당의 이름이건 뭐건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냐.

강금실 전 장관은 선거에 이기건 지건 서울시 공무원들의 문화에 금이 가게 하고 그것이 멀리 봤을 때 서울시 행정을 시민중심으로 바꿀 수 있게 할 수는 있다. 한나라당 출신 시장이 되는 것보다 앞으로 정치구도도 더 부드럽게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인다. 무엇보다 우리도 이런 시장을 뽑았다라는 자긍심이 투표하는 사람들 개인들에게 알게모르게 심어질 것이다. 그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재미도 있을 것이다. 멋진 사람을 선거에 내고 뽑는 일은 표를 던지는 사람도 멋지게 한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현 정권에 대해 소극적이나마 정치의식의 심사대라는 의식이 중요하다. 이것은 표를 던지는 사람들의 정치의식과 역사의식에 맞닿아 있다. 촛불을 들고 싸우건, 스크럼을 짜고 길로 나서건, 보다 소극적 형태로 표를 던지건 이것은 나의 역사의식의 발로여야 한다. 최소한 지성인은 그럴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강금실 전 장관을 서울시장으로 추대하고 선대위에서 뛰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소망까지 잠시 품었던 나는 그것이 나의 역사의식과 별개가 아니었는데 대추리 사건 후 나의 정치-역사의식과 충돌하게 되었다. 내게는 나의 선택이 나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이므로 이것은 단지 정치적인 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내게는 실존적인 문제에 까지 이른다.

나는 반대한다. 나는 5월 31일 서울시민이라면 아까운 강금실 전장관을 찍을 수 없다. 이것은 내 양심의 문제다. 나는 고발해야한다. 현정권이 잘못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강금실 전장관은 아깝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그가 서울시장으로 출마한 사람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대추리 사태에 분명하게 잘못을 지적하고 항의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강금실 전 장관을 찍는 표가 바로 죽은 표다. 그것은 선거라는 정치행위를 하는 나의 죽음을 뜻한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멋진 사람이 멋진 이유는 그가 자기의 모습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강금실 전장관은 그를 필요로 하는 때 다시 멋진 모습으로 나오게 되기를, 나 살아있는 동안 우리 현대사에 그 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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