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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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인터넷 판을 보다가 미국-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운 이슬람 단체 헤즈볼라와 박노해 씨의 기사가 눈에 띄였다. 다른 건 흘려두더라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우리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말한 부분이었다. (아래 색깔을 달리해 표시했다.) 그 말 자체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구체적으로 무언지 말하기 힘들지만, 그런 목표를 설정하였다는 것이 신뢰를 주었다.


기사 인용 : 원문보기


헤즈볼라를 만날 때 내가 제시한 바램은 헤즈볼라의 실질적 최고 지도부일 것, 나임 카셈과 같은 60대 지도자가 아닌 3,40대 초반의 젊은 지도자일 것, 정치적 만남이 아닌 진정성 있는 대화의 시간일 것 등이었다. 나는 정부대표도 아니고 힘있는 직위도 없고 저명한 언론기자도 아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 만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약속장소인 0000 지역에 도착하니, 곧바로 뒤에 차가 따라붙고 문 두 개짜리 승용차 뒤에 태우더니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룸미러로 미행차량을 감시하는 헤즈볼라 단원의 눈빛이 긴장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여러 골목길을 급회전으로 돌고 지하 주차장을 통과한 뒤 어느 건물 앞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두툼한 테니스 가방에 담긴 기관총을 들고 서 있는 사복 청년들이 있었고, 건물 앞에는 웨딩카로 위장한 차량행렬이 방어를 하고 있었다. 헤즈볼라 본부 사무실은 소박하지만 기품이 느껴졌다.


비서실장이 정중한 어조로 물어왔다. 통역은 영어로 할 것인지, 아랍어로 할 것인지, 오른쪽에 앉으시는 것이 어떠한지, 시간은 정확히 30분 등등의 기본 의전에 대해 양해를 구해왔다. 나는 통역하면 겨우 15분인데 너무 짧지 않느냐, 조금만 시간을 늘려달라고 요청하자 삼십 분 뒤에는 독일, 프랑스 등 외신 TV와 인터뷰 약속이 줄지어 잡혀 있다며 정중히 양해를 구해왔다. 비서실장과 차도르를 입은 젊은 영어 통역 비서가 배석했다. 나중에 보니 삼십대 초반의 그녀는 헤즈볼라의 공식 대변인으로 전쟁 기간에도 CNN, BBC 등에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과 출연해 헤즈볼라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잠시 후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나는 ‘살람 알레이쿰’ 악수를 한 뒤 볼키스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간단하게 서로를 소개했다. 그는 나와프 무사위 헤즈볼라 국제국장이었다.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을 대신해 중요한 대중연설과 TV출연으로 헤즈볼라를 대표하고 모든 대회 협력을 총괄하는 암살순위 3위 안에 드는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람이다.


나는 고뇌의 레바논에 이제야 오게 되었다, 헤즈볼라는 테러조직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라고 물었다. 그는 싱긋 웃으며 “혹시 제가 모르는 헤즈볼라의 테러증거나 민간인 학살 행위에 대한 보도를 접한 적이 있으신지요. 조작 보도 잘하는 미국과 이스라엘도 지금까지 헤즈볼라의 테러행위에 대해 90년대 이후 단 한 건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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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적과 싸우는 ‘小 지하드’는 오히려 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 안에 도사린 욕망을 스스로 이겨내고 자기 안의 신성을 빛나게 하는 투쟁인 大 지하드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투쟁을 잘한다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기를 이겨 밖의 불의와 악을 사랑으로 물리치는 大 지하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大 지하드를 수행하는 자, 그가 헤즈볼라입니다.”

힘들 때마다 마음에 새기는 말이 무엇인지요?

“좌절과 웅크러듦은 그것이 곧 죽음입니다. 훌륭한 죽음은 그것이 곧 삶이라고 우리는 봅니다.”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은 두 가지를 즐겁게 기다립니다. ‘승리’와 ‘순교’, 그러기에 우리가 이기든 지든, 죽거나 살거나, 그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는 그것을 좋은 일로 받아들입니다.”“사랑하는 그를 잃었지만 그는 좋은 일로 좋은 곳으로 먼저 갔다. 그래서 이 길에서는 가시가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헤즈볼라에게 평화란 무엇인지요?

“음식이 차려지고 있는 탁자의 두 기둥과 같습니다. 지지하는 다리 두 개가 없으면 평화란 없습니다. 하나의 다리는 정의, 정의가 없으면 기울어져 모든 음식이 떨어집니다. 또 하나는 자유, 노예에게 아무리 좋은 음식을 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곧바로 나에게 물어왔다.

“많은 고난을 겪으신 샤이르 박에게 평화란 무엇인지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쿠리아에서도 밥을 공정하게 나눠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도 두 개의 기둥으로 표현해 보지요. ‘밖의 기둥’과 ‘안의 기둥’이 없으면 음식이 차려지는 ‘몸의 밥상’과 ‘영혼의 밥상’이 쏟아지고 말겠지요. 밖의 기둥은 ‘공평’과 ‘자유’에 해당되겠지요. 하지만 인간은 안의 기둥이 있어야겠지요. ‘영성’과 ‘아름다움’이지요.

그러자 “안의 기둥이라는 말이 새롭습니다. 헤즈볼라 역시 무기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신문화로도 싸우고 있습니다.”


레바논 민중의 헤즈볼라 지지 열기에 놀랐습니다. 무엇으로 그런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지요?

“헤즈볼라의 일관된 정직성과 자기희생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단 한 번도 민중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이 쳐들어올 때 헤즈볼라 전사는 피난가는 주민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저항합니다. 많은 전사들이 죽어갑니다. 휴전이 되고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오면 집이 온전합니다. 마을과 집이 파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 헤즈볼라는 몸을 가릴 것이 없는 위험한 광야에서 전투를 하다 죽어갑니다. 주민들이 집을 정리하다 보면 부엌에 쪽지 한 장이 놓여있습니다. ‘전투 중에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서 물과 빵을 허락 없이 먹었습니다. 제가 전사하면 이 쪽지를 들고 헤즈볼라를 찾아가면 보상해 줄 것입니다. 살람 알레이쿰.’ 주민들은 그 쪽지를 들고 와 흐느끼며 헤즈볼라를 위해 기도하며 기부를 합니다. 지도자와 혁명가는 항상 뒤가 아니라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적들조차 우리의 말을 믿습니다. 헤즈볼라는 적에게 한 말과 약속은 어떤 손해를 보고 희생이 따라도 꼭 지켜왔습니다. 협상과정에서건, 전선에서건, 감옥에서건. 그리하여 적들로부터도 존경과 두려움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아무런 직위도 힘도 없고 저명 언론인도 아닌 나를 만나기로 한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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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각 나라 정부 고위 인사나 세계적인 언론을 선별해서 만납니다. 수많은 면담 요청서 중에 샤이르 박을 만나기로 한 것은 저희들 가슴의 부름이었습니다. 샤이르 박이 살아온 자기희생과 헌신의 경력에 고개를 숙입니다. 샤이르 박의 시 몇 편을 찾아 읽어보았고 여러 가지로 저희들을 비춰보고 싶었고 꼭 만나야할 분이라고 함께 결정했습니다. 이 세상에 제일 강한 것은 돈도 무기도 권력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가진 ‘말’입니다. 깨끗한 말은 자신의 눈물과 피로만 빛납니다. 정치가들은 왜 말을 그리 추하게 하고, 수준을 낮추고, 폭력적으로 하는지요. 하늘과 민심이 보는 것은 옷도 아니고, 명패도 아니고, 돈도 아닙니다. 그의 말입니다. 헤즈볼라의 말 중 폭력적이고 추한 말을 찾아보십시오. 지키지 못할 약속을 찾아보십시오. ‘시인’은 말의 성전에 순교하는 자입니다. 샤이르 박의 시와 말이 가슴을 울리는 것도 그런 자기 순교의 삶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헤즈볼라 역시 자신의 피와 눈물로 닦아온 깨끗한 말이 있기에 우리는 이렇게 만나게 된 것입니다.”

헤즈볼라는 어떤 새로운 인간을 지향하고 어떤 사회를 이루려 하는지요?

헤즈볼라의 꿈은 우리 고유의 문화 정체성의 유지입니다. 미국 방식의 물질 풍요에 우리 삶의 지향을 두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은 두 개의 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굶주리는 사회에서 인간성을 찾기 어렵듯, 돈이 신으로 군림하는 사회는 인간성이 죽은 사회입니다.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고 싶습니다. 샤이르 박이 쿠리아에서 시도하신 새로운 진리실험을 우리도 지향하고 있습니다. 시장보다 사회가 우위에 서고, 국가가 시민보다 우위에 서는 체제를 결코 원치 않습니다. 샤이르 박이 말씀하신 ‘자유로운 개인의 나눔문화’와 통합니다.”

헤즈볼라는 이슬람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것이 아닌지요?

“아픈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온 세계에 이슬람 사회가 건설되기를 바랍니다. 이슬람이라는 것이 뭡니까? 평화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는 다른 종교와 신념을 가진 주민들에게 그것을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선택은 개인 개인이 하는 것입니다.”

쿠리아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요?

“쿠리아의 젊은이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쿠리아도 레바논도 강대국의 식민지 억압을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 정체성을 지켜내고 정치경제적 독립이 없이는 삶의 맛이 없습니다.

꽃은 일 년을 살지만 꽃 피우는 시기는 한 달입니다. 먹고 사는 것은 누구나 한평생 합니다. 젊음이라는 너무나 소중하고 짧은 꽃의 기회를 소중하게 써야 합니다. 자기 가슴 안의 선과 정의, 영혼은 젊을 때 키우지 않으면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주제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나중에는 점점 그가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는 이거 국정자문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서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느덧 훌쩍 두 시간이 지났다. 비서실장은 줄지은 약속들을 취소시키느라 전화를 들고 들락거리면서도 함께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두 시간 반쯤 지났을까, 그는 과로 때문인지 약을 먹으며 “제가 오늘 몸이 좋지 않아 식사 대접을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번에는 저희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암살의 위험에 처해있는 저도, 이렇게 위험한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샤이르 박도, 우리 꼭 살아서 다시 만납시다.” 우리는 볼키스와 포옹을 한 뒤 헤어졌다.


2006년 휴전 직후, 나는 베이루트에서 다시 헤즈볼라 최고 지도부를 만났다. 베이루트 남부 어느 레스토랑 안쪽에 있는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한 첫 번째 약속은 연기되었다. “처음으로 약속을 어깁니다. 만나서 사과와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그들은 약 두 달간의 전쟁과 전쟁 후의 격무로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이스라엘군의 점령지 철수와 항공, 해상 봉쇄문제 해결, 하루가 시급한 재건복구사업, 군사부문 재정비, 암살위험 속에 비밀은신처에서 진행하는 알 자지라 TV 라이브 대담과 백만여 대중집회 준비, 각국 사절단 영접과 전후 각 정파 재편구도로 분주한 나날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그들은 내가 묵고 있는 허름한 호텔로 무장 경호대도 없이 직접 찾아왔다. 첫번째 만남과 너무 달랐다. 전쟁 승리자의 자신감이 온몸에서 흘러나왔다. “우린 지금 자유가 없이 얽매인 몸이라 약속을 어겨서 미안합니다. 제가 직접 찾아와 사과와 이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이렇게 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전쟁기간 중에 가장 긴박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반가운 재회의 대화를 나눔 뒤 이번 레바논 전쟁을 어떻게 결산하십니까? 라고 물었다.

“전 세계에 우리의 진실과 저항의지를 표명했고, 승리라는 이름이 우리 헤즈볼라에게 쓰여졌고 인류 앞에 바쳐졌습니다. 이 승리는 우리만의 승리가 아니고 레바논 민중과 함께하며 반전평화를 외친 전 세계인이 함께 한 승리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대로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고, 패전을 수습하고 정비한 후 재침공할 시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레바논 국민들의 저항에 그들은 많이 느끼고 배웠을 것입니다. 몇 년 안에 재침공하는 것은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민간 폭격과 아이들 학살까지 하면서 인류의 눈앞에서 벌거벗은 채 전력을 다했지만, 사실 헤즈볼라는 우리가 가진 카드의 절반도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간 피해를 우려해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수도인 텔아비브 폭격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미국과 이스라엘도 알 것입니다.”

시리아와 이란에 대한 침공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지요?

“부시는 중동에 분쟁을 심는 것이 기본정책입니다. 그러나 시리아와 이란 둘 다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는 전혀 다릅니다.”

레바논 정부군과 유엔 평화유지군이 레바논 남부에 배치되어 헤즈볼라 무장해제를 시도하면 내전 상황이 되지 않겠습니까?

“헤즈볼라의 정당한 영토수호 무장을 그 누가, 무슨 힘으로 해제시킬 수 있겠습니까. 세계 최강의 미국과 이스라엘도 처음으로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원수질 일도 없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레바논 영토의 한가운데서 무엇으로 헤즈볼라와 맞서려고 하겠습니까. 안보는 첨단 무장력이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중의 신뢰, 인류의 신뢰로 진정한 안보는 가능한 것입니다. 헤즈볼라는 그 교훈을 세계 앞에 보여주었습니다. 많은 피해와 희생으로 헤즈볼라의 진실을 세계가 알게 되었고, 레바논 민중의 헤즈볼라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인류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샤이르 박께서 북부 바알벡에서 위험한 남부 레바논 국경지대까지 구석구석 다니셨는데 그 평화 열정에 우리 모두 놀라움과 감명을 받았습니다. 불발탄과 화학탄, 집속탄이 깔려 있어서 날마다 샤이르 박 안전에 가슴을 졸였습니다. 수많은 주민들을 직접 만나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요.”

나는 여러 가지 느낀 점과 현장 주민들의 육성을 전해주었다. 그는 꼼꼼히 메모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나는 여기에서 공개하기 어려운 민감한 질문을 하기도 했고 냉정한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솔직하고 성실하게 답변했다. 헤즈볼라가 직면한 털어놓기 어려운 도전들을 솔직하게 토로하기도 했다. 그의 전화가 계속 울려대기 시작했다. 중요한 미팅이 있어 미안하다며 전화를 눌러 껐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광화문 네거리에서 펼친 나눔문화의 <세이브 레바논> 활동사진들과 책자와 신문들을 전해주고 레바논에서 찍은 의미 깊은 아이들의 사진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뜨거운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그가 빠뜨리고 간 물건이 있어 전해주려고 나가서 차문을 여니 거구의 사내의 눈시울이 젖어있었다. 내가 전해준 사진들과 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그는 씩 웃으며 “헤즈볼라는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살람 알레이쿰”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나는 내가 찾아다닌 남부 레바논의 거의 모든 마을에서 가족이 죽고 집이 무너진 주민들의 헤즈볼라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헤즈볼라는 이슬람 영성에 바탕한 ‘성직자 리더십’과 마을 속에서 헌신하는 ‘신뢰의 리더십’, 레바논 주민들에게 새로운 재미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체 수익을 창출하여, 그 돈을 빈민복지에 쓰는 ‘가치 경영’, 시아파 부자들의 수입 중 1/5을 헤즈볼라에 기부하는 뿌리깊은 전통, 천만 시청률을 가진 <알 마나르> TV와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의 운영, 마을 속에서 가장 성실하고 지도적 위치에서 일하다 유사시에는 군사조직으로 변모하는 주민과 일체화된 헤즈볼라 군사 위원회, 각 정파와 경쟁하면서도 반 이스라엘 전선에는 기독교 조직과도 함께하는 유연한 정치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극복해야 할 한계 또한 분명했다. 여성 평등 문제와 헤즈볼라 집권 후의 권위주의와 부패문제, 그리고 경제성장으로 발생할 개인의 자유문제, 개인주의와 엄격한 이슬람 공동체성의 충돌, 무관심한 생태문제, 헤즈볼라에 대한 국민 87%의 극단적 지지와 나머지 주민의 극단적 반감으로 인한 내전 위험요인들, 헤즈볼라의 초기 이념과 군사력과 조직 자금을 지원한 큰 형네인 이란과의 관계 재정립 문제 등등이 그들이 앞으로 넘어서야 될 가볍지 않은 과제인 것이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 속의 정부가 아니었다. 사실상 유일한 정부였다. 폭격과 학살의 세밀한 피해 조사와 신속한 재건 복구도 헤즈볼라의 몫이었고, 레바논 전 국토에 대형으로 설치된 폭격과 학살 사진이 실린 승전의 광고판과 하산 나스랄라의 사진들, 백만 명이 넘는 대중집회를 단 한 건의 사고와 잡음없이 치러내는 놀라운 동원력과 질서 유지력, 휴전 직후부터 미국과 이스라엘과 물밑 협상채널이 신속하게 가동되는 외교 네트워크망, 피해 입은 각 마을마다 밤낮없이 재건 작업에 헌신하고 있는 헤즈볼라 노랑 모자를 쓴 청소년과 중장비 기사들, 그런 복잡 다차원의 거대 조직을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헤즈볼라의 엄청난 조직 시스템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힘은 깊은 이슬람 영성과 엄정한 헤즈볼라의 율법학에 기초한 ‘성직자 그룹의 리더십’에서 비롯하고 있었다.

헤즈볼라는 전쟁 중에도 중요한 전투에는 반드시 사진작가와 TV 카메라가 함께하고 있었다. 그만큼 민심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헤즈볼라 최고 지도부는 나를 만나서도 “하느님은 민심 속에 계신다.” 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지금 레바논 최고의 인기 프로는 헤즈볼라가 제공하는 이스라엘 고위첩자 적발 과정과 포로협상 과정에 대한 필름과 작은 총 하나로 나무에 숨어 이스라엘 첨단 헬기를 떨어뜨리는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어떻게 저런 것까지 필름에 담을 수 있었느냐고 묻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알라와 민중의 눈이 지켜보고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레바논 국민의 눈과 귀를 끌어 모을 특종 필름들을 수십 개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레바논 민중과 생활 속에서, 전쟁 속에서, 문화 속에서, 교육현장 속에서, 재건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 속에서, 하나로 결합된 헤즈볼라는 곳곳에 내걸린 순교자들의 사진과 함께 <레바논 남부는 바위와 같다>라는 구호를 실감케 하고 있었다.


글/사진 박노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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