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h Mail 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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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명훈 ?

앞의 편지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게 있었더구나. 두 가지야. 첫째는, 바로 0 . '자연수'를 말할 때, 보통 1 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보태지는 수들로 보잖아. 그래서 삼촌이 앞에서 자연수의 덧셈표를 쓸 때도 0 을 빼고 썼던 거고. 그렇게 보면

이지. 그런데 여기서의 0 은 그냥 10진법에 보조적인 수단으로 밖에 안쓰여. 셈에서 0을 빼놓았던거지. 그건 0 을 아직 '수'로 보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해. 수 천 년을 거쳐 10진법으로 자연수를 나타내게 되고 있다고 앞의 편지들에서 말했어. 그렇게 되면 자연수는 1, 2, 3, 4, 5, ... 이렇게 써지지. 그런데 자연수를 나타내는 기호에서 자연수가 아닌 기호 0 이 들어가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니? 이미 말했듯이, 이렇게 하면 0 은 그냥 '빈칸'의 역할 밖에 하지 않아. 삼촌이 보기에 이것은 정당하지 않은 것 같아. 기호만 빌려 오고 그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밝히지 않다니. 0 은 노예가 아니거든. 반대야. 알게모르게 깨달아 가겠지만 0 은 정말 중요한 수거든. 어떻게 할까? 그렇다고 학교에서 자연수를 말할 때 0을 확실해 빼는데 자연수 세계를 이야기하면서 아무 근거 없이 0 을 자연수로 넣어버릴 수도 없고 말야.

이렇게 하기로 하자. 자연수 세계를 조금 넓히는 거야. 0 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거지. 그래서 0 도 제대로 대접을 해주자는 거야. '0 이 자연수다, 아니다' 라고 굳이 말할 필요 없을 것 같아. 0 을 자연수로 보지 않는다면, 그냥 우리는 자연수보다 '조금' 넓은 세계를 보자는 뜻이야. (과연 '조금' 넓혀진 걸까?)

그렇다면 덧셈표도 확장해줘야지. 다시 쓰자. 0 이 덧셈에 참여할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정해줘야지. 그것은 이렇게 돼. 충분히 납득이 되니? 어떤 것에 '하나도 없는 것'을 더했으니 바로 그 어떤 것이 나온다는 말이니까, 그럴 듯 하잖아.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럼, 앞으로는 항상 0 을 함께 볼거야. 0 을 자연수로 안본다면, 0 을 포함한 자연수 세계 라고 하면 돼. 이것 꼭 명심해라. 알았지? 위의 새 덧셈표를 그렇게 보니, 0 은 덧셈에 참여할 때 매우 특수한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겠니? 놀랍게도 0 은 어떤 자연수와 덧셈을 해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잖아. 자기가 아니고 덧셈하는 다른 수를 그냥 그대로 내 줘.

만약 '어떤' 자연수 대신 a 를 쓴다면, 그래서 앞에 나온, 자연수들 3, 27, 100, 5, 99, 2008 들을 a 로 대신해서 쓴다면, 이렇게 더 일반적으로 쓸 수 있겠지.

0 이라는 수, 참으로 겸손하지 않니? 항상 그럴까? 아냐.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덧셈에서는 더 말할 나위 없이 겸손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자주 보게 될거야. 참 묘한 수야.

그리고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구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해.

" 수학이란 정말 따분해요. 세상은 정말 신비로운데 수학에서는 항상 1 + 1 = 2 라고만 하잖아요. 물방울을 보세요.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하나가 되잖아요. 그리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족을 이루면 그 가족은 둘이 아니라 셋이 되기도 하고 넷이 되기도 하구요. 1+ 1 = 3 또는 1 + 1 = 4 도 될 수 있어요."

수학에 대해서 오해가 많은데 이런 생각도 그 중 하나야. 명훈이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삼촌은 이렇게 말하곤 했어.

" 그럴까요, 정말? 그건 '덧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죠. 지금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건 1 + 1 = 2 인 수학이지요. 당신이 만약 1 + 1 = 1 이라고 하고 싶으면 그런 수학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대신 그때 당신이 쓰는 덧셈 + 은 우리가 쓰는 것과 조금 다른 뜻이예요. 그러니 기왕이면 다른 기호를 썼으면 좋겠어요. 일상 생활에서 쓰는 말로 '더하다'가 같다고 해서 항상 같이 쓰면 안되죠. "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해.

" 만약 당신의 1 + 1 = 1 인 수학은 참 묘한 세계일 게 틀림 없어요. 왜냐하면 양 쪽이 같다고 했으니, 하나 씩 덜어내도 같은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당신의 덧셈'이 통하는 세계에서는 1과 0 이 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건 하나 '있는' 것과 하나도 없는 것이 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져버리잖아요. 또 당신의 '물방을 수학'에서는 하나에서 하나를 덜어내면 물방울이 둘이 되네요. 그런 말인가요? "

또 1 + 1 = 3 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

" 그렇다면 같은 양쪽에서 하나 씩 덜어내봐요. 그러면 왼쪽은 하나가 되고 오른쪽은 둘이네요. 그렇다면 1 = 2 라는 말이군요. 다시 하나씩 덜어내 봅시다. 그렇게 되면 1 = 0 이군요. 그렇다면 1 = 2 이고 1 = 0 이니까, 자칫 0 = 1 = 2 라는 말이가요? 이 말은 모든 수가 다 같다는 말이되버리는데... 아니면 양 쪽이 같다고 했으니 하나 씩 더해 봐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전 잘 모르겠어요. 1+1 = 3 이라고 했으니, 둘에 하나를 더하면 어떻게 되는거죠? 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족을 이루었는데 거기 한 사람이 더해지면 어떻게 되는거지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가족들마다 모두 다른 건가요? "

결국 '물방울 수학'이나 '가족 수학'은 세상에 있는 수 많은 현상 중에서 지극히 특수한 경우에 대해서만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아니라면 세상의 모든 수는 같다라는 식의 말을 하는 거지. 만약 그런 세계가 있거나, 그런 세계가 충분히 유용하다면, 그것을 잘 따져서 정의하고 그것으로부터 '논리적으로 틀림없이' 잘 발전시키는 것이 수학이지, 1 + 1 = 2 만 수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란다. 이 말을 이어서 하면 복잡한 논쟁이 될지 모르겠구나. 이렇게 말하고 여기서 일단 물러날래.

" 1 + 1 = 2 인 수학은 수많은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인류가 이 정도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차를 타고 이리 오셨나요? 컴퓨터로 편지를 쓰고 검색을 하시죠? 전화기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세요? CD 로 음악을 듣지 않으신지요? 집에 가서 전기는 켜시겠죠? 그게 다 1+1 = 2의 수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몰라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죠. 게다가 1+1 = 2 인 수학의 세계의 비밀에 대해서조차도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답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얼마나 자유롭고 신비롭고 아름답다구요! "

명훈이는 앞에서 했던 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구나.

오늘은 짧게 이 정도로 끝낼께. 하나는 꼭 잊지 말아 줘. 다음 편지부터 자연수 세계를 다룰 때, 항상 0 을 함께 볼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 자, 새끼손가락..

사랑하는 나의 조카 명훈에게, 삼촌이


수학 편지 대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