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h Mail 08

DoMath

명훈에게.

청사포 바다로 하얀 물꼬리를 길게 늘이며 작은 배가 지나간다. 등대 주위에서 바다 농사를 하는 어부인지, 달리는 저 배가 남기는 발자취가 아득하게 맺혔다 사라지는구나. 지난 편지를 쓰고 며칠이 지났지? 그새 삼촌은 공부모임 있어 준비를 해야했고 빌려온 책을 되돌려주기 전에 다시 읽으면서 다시 써 보았단다. 책읽기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있다가 사라진 물자취처럼 선명하게 맺었는가 싶었는데 깜박하는 사이 사라지고 마는 것 같아. 그런데 세상 일이 다 그럴까? 우리 공부도, 기억도 생겼다 다시 바다가 되어버릴 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을까? 아니겠지? 다른 건 모르겠지만, 최소한 수학 공부는 아냐. 그것을 증명해보라고? 증명해볼께.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준비할 게 많아. 우선은 기본적인 것들을 다 이해하면 삼촌이 그것을 수학적으로 증명을 시도해 보려고 해. 우선 우리는 열심히 씨를 뿌리고 땅을 또는 바다를 갈자꾸나.

오늘 편지는 지난 편지에서 다루려고 했다가 어쩔 수 없이 밀려난 주제에 대한 거야. 지금까지는 덧셈과 곱셈만 할 줄 아는데 여기에 셈을 보태갈 거야. 그 중 오늘은 '지수셈' 에 대한 것이지. '덧셈을 여러 번 하는 셈' 을 곱셈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 그렇다고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는 말도 이미 했어. 우리가 높은 곳을 올라가야 할 때, 사다리를 써서 딛고 올라가잖아. 다 올라가면 그때까지 썼던 사다리를 버려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경우가 있겠지. 높이와 용도가 맞는 새로운 사다리로 바꾸어 더 높이 오르듯, 곱셈도 처음엔 '덧셈을 여러 번' 이라고 받아들였지만, 처럼 자연수가 아닌 수를 곱하게 될 때는 '새 사다리'를 마련해주었어.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정해줄 '지수셈'도 처음엔 자연스럽게 '곱셈을 여러 번 하는 셈' 이라고 시작했다가 어느 정도 이해되면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으로 넓혀갈거야. 먼저, 다시 덧셈에서 곱셈으로 갔던 길을 되짚어 볼까?

로 처음엔 받아들였잖아.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을 해볼 수 있을까?

를 정해줄 수 없을까? 있어. 물론이지. 그것을 지수셈(Exponentiation) 또는 '거듭제곱' 이라 하고, 보통 "5의 7 제곱" 이라고 말하지. 그런데 삼촌은 '거듭제곱'이라고 하는게 별로 마음에 안들어.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어쨌든, 아래 있는 5 를 밑(base) 이라고 하고, 위에 제곱에 대한 정보를 말해주는 7 을 지수(exponent)라고 불러. 기호로는 짧게

로 쓰지. 이 셈은 벌써 매우 복잡해보이지? 곱셈만 해도 해볼만한 셈이었어. 곱셈표를 외우고, 괜찮은 곱셈의 알고리듬을 적용하면 왠만해선 다 얻어낼 수 있지. 그런데 '놀랍게도' 곱셈을 여러 번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알고리듬을 생각하는게 아직은 쉽지 않아. 게다가 ,3을 서른 세 번, 7 을 백 번, 100을 1000번을

으로 쓰듯, 지수셈을 그 틀만 쓰게 되면, 가 자연수 일 때,

라고 쓸 수 있어. 그런데 덧셈 곱셈에서는 셈할 때, 순서가 중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셈의 순서가 중요해. 왜냐하면,

니까. 반례(contraexample) 를 하나만 들어도 돼.

안되는 예가 있으니까 안된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조금 이상하지 않니? '덧셈을 여러 번' 해서 얻은 곱셈은 덧셈처럼 교환 법칙이 되는데, '곱셈을 여러 번'이라고 한 이 셈은 왜 그게 안될까? 그리고 지수셈에 '결합 법칙'이라고 할 만한 것은 될까?

지수셈은 결합법칙이 통할까?

해 봤니? 해봤으면 알아차렸겠지만 덧셈을 반복 하는 것과 곱셈을 반복해서 하는 것 사이에는, 언뜻보면 묘하게도, 중대한 차이가 있어. 이렇게 복잡한 셈을 뭐하러 사람들은 가져와서 쓰는 것일까? 이 셈은 수학을 공부하는데 매우 자주 나와. 앞으로 우리가 공부를 해가면서 거의 편지마다 계속 나올 걸. 그러니 처음 만나는 지금 조금 익숙해 놓으면 좋아. 밑과 지수를 쓰면 어떤 큰 수를 나타낼 때 아주 간편해지고, 그것들을 더하거나 특히 곱할 때 도움을 많이 받는단다. 예를들어 지구의 둘레는 6000000 m 정도 인데, 이것은 밑과 지수로 하면 이라고 쓸 수 있어. 편하지? 아니라고 ? 그럼 이것을 비교해보겠니?

90000000000000 와 9000000000000000 로 표시는 것과
로 표시하는 것.

어때? 20세기를 넘어 21세기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수나 엄청나게 작은 수를 만나게 돼. 지수 표현이나 지수셈이 없었다면 고생 좀 했을걸?

100년을 사는 사람은 몇 초 사는 것일까? 지수 표현으로 나타내 보아라.

단지 엄청 큰 수나 엄청 작은 수를 나타내거나 셈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냐. 여기서 삼촌이 일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례를 들어보는 건 쓸데 없는 짓같아. 편지가 이어지면 명훈이 스스로 깨닫게 될거야.

그런데 그렇게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자주 등장할 이 지수셈이 교환도 결합도 안되는데, 정말로 그렇게 천방지축이기만 할까? 아니겠지? 무작정 제멋대로 작동하는 셈이었다면 지금까지 쓰이면서 대단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거야. 자, 이제 어떤 성질이 통하는지 몇 개만 보자. 아래에서 는 모두 자연수 중 어떤 것이라고 하자. 물론 서로 같을 수도 있어. 지금까지 했던대로, 지수셈을 '곱셈을 몇 번' 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면 아래 성질이 모두 그럴만해. 이 사실을 스스로 확인해보겠니?

혹시, 어려웠니? 이렇게 문자로만 되어 있으면 어려워 보일 수 있어. 어렵다고 포기하면 안된다, 알겠니? 포기하는 순간 아주 영영 알 수 없게 될 위험이 있어. 지수셈이 처음으로 명훈이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어? 낯설어서 안되겠어' 하고 손을 뒤로 감춰버리면 지수셈이 섭섭해 할거야. 처음 친구 만날 때 필요하듯, 알고 이해하려고 해야겠지? 기독교 성경에도 그런 비슷한 말이 있었던 것 같아. 처음에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은 나중에 탄탄대로를 만날 것이고, 처음에 쉬운 길만 골라 가려는 사람은 나중에 가시밭길을 만나게 된다고 말야. 그렇다고 무조건 어려운 길을 골라가라는 말은 아냐. 가야할 길이라면 피하지 말고 가라, 삼촌은 바로 그 말이 아닐까 여긴단다. 그게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보자. 자, 구체적인 수로 몇 개를 해 볼까?

자, 이렇게 보니, 더 잘 보이지? 3 이니, 5니, 7 이니, 하는 자연수들이 모두 신비로운 덩어리인데, 이것들끼리, 이어지면서 묘한 결과를 자꾸 낳고 있어. 어쨌든, 지수셈에도 꽤 그럴 듯하고 괜찮은 구석이 있지?

그런데, 그런데 말야, 명훈아. 우리가 곱셈을 말할 때도 그랬듯, 지수셈도 '곱셈을 몇 번하는 것'으로 고집부리고 있으면 난처해져. 이제 지금까지 그랬듯, 0 도 받아들이자. 그래 는 이제 0 도 될 수 있는 거야. 아래 질문에 답을 쓰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도 꼭 써보겠니?

어때? 어디서 이미 들었다면 바로 1 이요 ! 라고 말할지 몰라. 하지만, 왜? 3이 한 번도 안곱해졌는데, 그것을 왜 1 이라고 해야하지? 0 이 아니고, 2도 아니고, 4도 아니고 왜 ? 그러면 은? 왜 그럴까? 여러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떤 것도 증명은 아닐 거야. 우리가 그렇게 정해주는 거지. 지수셈이어서 이 1 인게 아니라, 인 성질을 담고 있는 바로 그것이 지수셈인 거야. 그렇다면 왜 하필 다른 게 아니고, 1일까?

자 그럼 질문 들어간다 .

따듯한 봄날, 창 밖으로 언덕에 진달래가 피어나고 있다. 점심을 먹고 뛰어 놀고 들어와 졸립다. 이 때 눈치없는 한 친구가 점심 시간 전에 했던 수학 수업에서 들었던 질문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 친구가 묻는다.

수업 시간에 이고 이라고 했잖아. 참 이상해. 왜 그래야 하는지. 그럼 은 뭐가 되는 걸까?

말을 듣자 마자 평소 수학의 지존이라고 스스로 치켜 세우는 똑똑이가 답한다.

- 어떤 a 에 대해서든 이니까, 도 일이지. 당연하지 않아? 이잖아. 그러니까, 이게 계속되면 그 다음은 일 수 밖에 !

말을 마친 똑똑이가 어깨를 으쓱 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다른 친구들은 '오, 역시나 ! 그러겠구나! ' 라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부럽다는 듯 똑똑이를 본다. 그 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 마침내 뚝뚝이가 말한다.

-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이잖아. 그러니까, 혹시 이 맞지 않을까?
자, 누가 옳을까? 둘 다 옳을까? 둘 다 틀릴까? 아니면 둘 중 하나는 옳을까?

편지가 몇 번 더 가고 다시 이 문제로 돌아오긴 할 건데, 넘어가기 전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공책에 적어 보겠니? 자유롭게 적어보고 친구나 동생이나 엄마 아빠하고도 이야기를 나눠 보렴.

아이구, 지금까지는 지수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본 성질들만 보았네, 지루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계산을 해볼까? 지금까지 이야기가 조금은 문학적이고 철학적이었다면 지금은 기계적인 과정을 거쳐야 해. 계산에 들어가면 조심해야해. 쉽다고 함부로 하다가 실수하지 않도록 ! 실수를 줄이는 방법은 풀 수 있을 때, 계산 과정을 넓은 데다 깨끗하게 이쁜 글씨로 또박또박 쓰는 거야. 그게 습관이 되면 나중에 좁은 데 급하게 하거나 머리 속으로만 해도 실수가 많이 준단다. 알았지, 삼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럼 이제 계산을 해볼까?

  • 를 지수를 써서 짧게 나타내면?
  • 이 참이 되게 하는 a 는 ?
  • 이 참이 되게 하는 a 는 ?

여기까지 잘 풀었으면 같은 문제를 다른 친구와 함께 비교해보거라. 서로 답이 다르다면 누가 옳은지 따져 봐. 그렇지만 조심해, 모두 답이 같은 데 답이 틀렸을 수도 있어. 그것 뿐이겠니? 모두 답이 다른데 모두 답이 틀릴 수도 있어.

자, 이런 기본적인 계산을 할 줄 알았으면 이제 머리를 굴려야 하는 문제를 풀어 볼까? 물론, 왜 명훈이 답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꼭 이유를 밝혀야 한다.

  • 이 클까, 이 클까?
  • 가 클까, 이 클까?
  • 중 어떤 것이 가장 클까?
  • 우리에게 덧셈, 곱셈, 지수셈이 있다고 하자. 이 셈 셋과 2를 네 번만 써서 가장 큰 수를 만들어보라.
  • 보다 크다. a 는 자연수 중 어떤 수다. 이렇게 될 수 있는 n 중 가장 작은 자연수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수일까?
  • 암산 ! :
  • 암산 ! :
  • 숫자로 0, 1, 2, 3, 4 만 쓰고 있는 5진법을 쓰고 있는 E.T 을 만났다. 학교에서 수학 숙제가 있는데 다 못풀었다고 울쌍이 되어 있다. "도와줄까? " 했더니 금방 얼굴이 환해지며 종이를 내민다. 종이에는 라고 적혀있다. 어떻게 써서 풀어주고 E.T 가 좋아할까? 그 딱한 친구가 다음 날 수학 수업에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까지 해주기 바란다.

벌써 문제에서 나왔지만, 아래 표를 공책에 잘 적어보아라. 이때, 같음을 나타내는 등호를 가운데로 해서 줄을 잘 맞춰 해 봐. .

모양이 아주 이쁘게 나올거야. 한 김에 아홉개만 하지 말고 여러개 더 해 봐. 자연수가 그런 묘한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은 10진법 자릿수법을 쓴 덕분인줄 알겠니? 만약에 아주 오래 전 진법이 정착이 되기 전에는 지수셈이라는 것 자체를 발전시키기 힘들었을거야. 곱셈도 어려웠는데 지수셈까지는 상상도 못했을거야.

공책에 1이 9개 있는 수를 제곱해서 적어봤으면, 스스로 9개 아니라 더 길게 하면서 어떻게 될지 상상을 계속해 보아라. 그리고 지수셈과의 첫만남을 끝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런 문제는 어떨까? 먼저 컴퓨터에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호를 하나 약속해야겠다.

을 7(2) 로 쓰고, 은 7(3) 으로 쓰기로 한다. 그렇다면 7(4) 를 뜻할거야. 이제 문제. 제법 묵직한 문제란다.
  • 7(100) 의 마지막 수는 무엇일까? 7(2008) 의 마지막 수는 무엇일까?
  • 7(1000) 의 마지막 두 수는 무엇일까?
  • 7(1001) 의 마지막 두 수는 무엇일까?
  • 앞의 문제를 7 대신 9 로 바꾸면?

지수셈을 처음 만났는데 꽤 어려운 문제들을 내서 괜히 겁나게 해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주제가 나왔으니 기왕이면 아주 쉬운 것부터 꽤 어려운 것까지 써본 것일 뿐이야. 이것 중 조금 밖에 못풀었다고 해도 스스로 실망하지 않아도 돼. 공부를 하다보면, 언제인지 자기도 모르게 쑥 클 때가 온단다. 우리 키도 그렇듯, 나도 모르게 밥 한그릇 먹고 또 먹고 하루 또 하루 가면서 계속 크는 것이거든.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가끔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곤 하지. 바로 공부도 그래.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만 우선 풀어보고, 안풀리는 것은 하나나 두개만 선택해서 붙들고 늘어져 보면 돼. 나머지는 나중에 더 불쑥 컸을 때 또 풀면 뜻밖에 쉽게 풀릴 수 있어. 물론 어떤 것은 그 때도 어려울 수 있지.


오늘은 이만 할께. 사실, 뺄셈으로 갈까, 지수셈으로 갈까 고민했단다. 공부를 할 수록 갈림길이 많아지거든. 그때 그때 선택을 해야해. 어떤 길로 가는게 더 좋을지. 보통은 뺄셈으로 가는 데 오늘은 지수셈으로 가 본 거야. 어짜피 이들은 다시 만나게 되어 있어. 그러니, 길을 선택했으면 우리는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자꾸나.

참, 시험은 끝났니? 제주에는 유채꽃이 흐드러진데. 남도에는 진달래가 언덕을 채색하고 있구나. 아름답겠지? 우리나라 바다가를 수놓던 꽃으로는 해당화도 유명했단다. 그런데 이제는 경치 좋은 곳마다 길을 닦고, 놀고 먹고 자는 시설이 들어서고, 몸에 좋다면서 뜯어가버려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대. 참 딱하지 ?


삼촌이 명훈에게 08년 4월 13일 쓰다.



수학 편지 대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