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h Mail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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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다시 돌아왔다, 명훈아. 잘 지냈니 ?

자연 생태 학교에 다녀왔어. 구경하러 간게 아니라 도우미로 일손을 도왔지. 지난 겨울 수학 캠프를 했던 산좋고 물좋은 미산 계곡에서 처음으로 해 본거야. 처음이라 욕심내지 않고 아주 자그맣게 열렸단다. 아주 소박했지. 이번엔 주로 곤충을 관찰했어. 너른 풀밭 마당에 환하게 전기불을 켜두니 밤이 되어 온갖 날벌레들이 날아들더구나. 장관이었어! 다음날 아침에는 계곡 쪽, 그리 길지 않은 산길을 걸으면서 풀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았어. 산더덕 보물찾기도 했단다.

어제는 수요일. 물의 날이라는 水 요일이어서 그런지, 또 비가 왔단다. 수요일마다 비가 오던 행진이 계속 되다가 잠깐 쉬더니 이번 주 다시 이어졌어. 다음 주는 또 어떨지 벌써부터 수요일이 기다려진다.

자, 그럼 지난 편지에서 끝내려고 했던 이야기를 오늘 이어서 하면서 마치기로 하자. 분수(fraction) 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우리는 어떤 두 자연수 a , b 의 비례를 나타내는 형태

를 보고 있었어. 그런데 이렇게 표현된 것을 아직 "그건 분명히 수(number)야." 라고 말하는 것을 몹시 조심하고 있었어. 그걸 느낄 수 있었니? 수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수라고 하기에도 아직 좀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서 지지난 편지에는 '수의 씨앗'이라는 말로 얼버무리기는 했지. 수이거나 수 아니거나 할텐데, 뭘 그리 고민하냐고? 고민까지는 아니고, 조금 조심스러워. 오늘 편지에서 드디어 '이것은 분명히 수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게 될거야.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있는 자연수와 정수와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니까, 이런 수들에 대해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게 돼.

먼저 두 자연수의 비례를 나타내는 수를 다루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했나 잠깐 되돌아 가볼까? 기억나니? '선분의 길이를 재거나' 또는 ' 얼마 만큼을 얼마씩으로 나누어 보기' 같은 개념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있고 그렇게 보면, 자연수로는 부족하다. 고 하는 지점에서 출발했지. 그래서 자연수 하나가 아니라, 두 자연수의 관계 또는 비례를 단칼에 나타낼 수 있는 수가 필요했지. 그래놓고도 '그런 것은 어떤 어떤 수이다' 라고 말을 못했지. 아이러니 하게 들리겠지만, 바로 그 수를 탄생시킨 바로 거기가 문제야. 바로 그 수를 탄생하게 했던 바로 그 이유가 '너는 수(數)다'라고 부르기 어렵게 하는 이유라니 !

먼저, 우리가 탄생시킨 그 수는 꼭 '두 길이의 비례' 나 '어느 만큼의 양을 다른 만큼의 양으로 나눔'만 뜻해야할 이유가 없어. 바로 그 이유때문에 생겨났지만, 그 이유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자연수 1 도, 처음엔 양 한마리, 귤 하나, 숟가락 하나, 사과 하나 처럼 아주 구체적인 데서 시작했지만, 꼭 거기에 머물러있지 않지. 우리의 자연수 1 은 그 모든 '하나'들을 관통하고 마침내 그것들 너머의 그 무엇이야. 그런 '하나들'은 다 세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많거니와, 마침내 그런 구체적인 사례들을 너머 고고하게 있는 바로 그거지. 좀 어렵니? 나뭇잎 하나 그것도 1 로 할 수 있고, 태양 하나, 그것도 1 이고, 먼지 한티끌도 1 이고, 명훈이도 세상에 오로지 하나이니 1 이야. 1 은 그렇게 위대하지. 그래서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고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어.

그렇듯, 우리가 새로 보고 있는 수도 그래. 꼭 길이의 관계나, 어떤 떡을 몇 조각으로 자를 때의 어느 정도를 뜻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구체적인 데 머무르지 않아. 얼마든지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도록 그것은 아득히 먼 곳,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게 돼. 그래서 그것도 우리의 마음으로 볼 때만 보여. 그렇게 멀어지고 멀어져서 마침내 마음 속 별처럼 떠 오를 때, 비로소 수가 될 수 있을거야.

그래야 비로소 두 자연수의 관계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두 정수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지. 자, 봐. 예를 들어,

은 현실적으로 무엇을 뜻할 수 있겠니? -2 라는 길이는 없잖아. -2개의 무지개 떡을 세 사람에게 나눠준다? 말이 안되잖아. '재다' '나눠 주다'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말이 안되지 ? 우리가 a 와 b 가 정수까지 확장할 때도 써먹을 수 있으려면

라는 것을 더 자유롭게 볼 수 있어야 해. 굳이 '재다' '나누다'라는 쇠공을 발목에 달고 자물쇠를 채울 까닭이 없지. 칸토르라는 100 여년 전 쯤 살았던 유명한 독일의 수학자는 수학은 자유다 라고 말했단다. 영어식으로는 칸토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분은 소위 '집합론' 이라는 것을 창시한 분이지. 그때까지 모호한 개념이던 '무한'을 붙들고 연구했던 분이야. 나중에 꼭 다시 만나게 될거야. 그것도 곧.

분수만 그런게 아니야. 삼촌이 보기엔 수만 그런게 아니더라구. 세상엔 그런게 많은 것들이 그런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단다. 처음 이름이 붙여질 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그 본래의 의미를 넘어서서 훨씬 넓은 뜻으로 쓰이면서 다시 태어나는 것들, 참 많아. 뭐가 있을까... 어라? 막상 쓰려니까 생각이 안나네. 길을 걷다가도 문득문득 잘도 생각이 나더니 ? 끙..끙.. 생각을 거듭 해봐도 꼭 그럴 듯한 게 안떠오르는구나. 더 써가면서 생각이 나면 그때 다시 말해줄께. 명훈이도 스스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구나. 좋은 생각이 나면 꼭 답장 해줘, 알았지?

좋아. 우선 넘어 가자. 이제 이렇게 하기로 하자. 어떤 두 정수 a 와 b 가 있을 때,

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을 분수(fraction) 라고 하는 거야. 약속하는 거지. 재느니 나눠 주느니 하는 말은 이제 안하기로 해.

그렇다면 이런 형태를 하고 그런 옷을 입은 것은 '수(數)다 ! ' 라고,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어. 그게 도대체 뭐냐고 말하지 않고, 그냥 그런 모양이면 분수라고 하자 고 간단히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런 옷을 입고 있으면 그렇게 부르는 거야. 마치 투명인간 같지? 그 옷을 벗어버리면 도무지 안보이게 되니까.

그런데 도대체 그런 옷을 입고 그런 모양을 하는 건 어떤 수일까?

바로, 정수 a 와 b 가 있을 때,

를 만족해주는 바로 그런 x 인 수들이야. a, b 와 곱셈, 등호로 결정되는 어떤 수가 되는 거지. 재느니 나눠주느니 하는 말을 포함하지만, 꼭 거기에 발목잡히지 않아도 돼. a, b 가 다르면 항상 다른 수를 정의해 주게 돼. 예외는 있지. 뭐냐면 예를 들어.

일 때, 그러니까 a 는 -2, b 는 +3 일 때 인데, 이 두 수가 결정해주는 수는,

이잖아. 그런데, a 가 -4, b 가 +6 일 때도 결과는 같잖아. a 와 b 가 모두 자연수일 때의 경우를 우리가 지난 편지에서 보았는데, 기억이 나니? 자연수에서도 되었던 성질이니까, 그것을 포함한 정수일 때도 그게 되어야 좋겠지. 그러니까,

인 관계를 여기서도 지켜 준다고 받아들이는 게 좋지. 짧게 요약해서 다시 말하면

는 다른 수가 아니라고 하자는 거야. 분모 분자에 똑같은 비율만큼 바뀌었으니까. 받아들일 수 있겠니?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할 필요가 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 해졌을 것 같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올 때를 기대하며 오늘은 이 정도서 넘어가자꾸나. 혹시 이해가 안되었다고 해도 괜찮아.

정리만 해 볼께. 라면, 다시 말해, a 와 b 가 같은 비율만큼 바뀌었으면,

라는 거지. 겉모양은 달라 보이지만, 분자와 분모의 전체적인 비례 관계는 변한 게 없어. 여기 나온 문자들은 모두 정수들 중 어떤 것이든 괜찮아. 같은 것 처럼.

인 x 와

인 x 는 다를 리 없지 않어? 그렇지? 앞에서 A, B , a , b , k 들은 정수들이기만 하면 항상 그렇지. 항상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괘...앤....차...안...아? 과연 그럴까? 수학 세계에서는 '모두다' '어떤 것이든 항상' 이라는 말이 나오면 '항상' 조심해야해. 과연 예외가 없는지. 혹시 소홀히 한 것은 없는지 눈을 부릎떠야 해. 다른 문제를 풀 때도 그래, 함부로 덜컥 답을 써놓고 보면 '아주 작은 실수'들을 하게 되서 틀리는 경우가 나올지도 몰라. 수학 시험 볼 때만이 그런게 아니고, 다른 과목에도 마찬가지야. 게다가 시험 볼 때만 그런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그런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될거야. 혹시 내가 소홀하게 생각해놓고 철썩같이 믿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떤 사람을 두루 이해하지 않아서 잘못 판단해놓고 내 판단이 꼭 옳다고 해버리는 건 아닌지, 꼭 챙겨야 하는 일을 챙기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쯤은 뒤돌아서 생각해봐야지. 자, 그럼, 우리도 잠깐 뒤돌아 보자. 그리고 생각해보자.


과연 앞에서 이야기 할 때, A, B , a , b , k 들은 정수들 중 어떤 것이든 괜찮을까? 아니지. 바로 가장 예외적인 수, 우리가 알고 있는 수 중 항상 골치거리인 수,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불이나 전기에 비유할만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수, 신비덩어리인 수, 무얼까?

그렇지! 바로 0 이야, 0. 이게 뭐가 문제인지 보려면, 새로 들어온 세계

가 무엇을 뜻했는지 돌아보아야 해. 우선 예를 볼까?

이 있다고 해. 이건 과연 뭘까? 만약, 우리가 " 사과 2 개를 0 명에게 나눠주기 " 를 생각해 봐. 어떻게 될까? 한 명에게도 안나눠 줬으니까, 그냥 두 개? 그렇다면 사과 두 개를 한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경우도 두 개인데? 두 경우가 같을 수는 없지 않겠어? 왜냐하면,

이 되고, 이 말은 0과 1이 같다는 것이 되면서, 결국, 1 과 2 가 같다는 말도 되고, 결국 모든 자연수는 같다는 말이 돼. '지금 우리의 수학'의 뿌리를 뽑아 흔드는 일이지.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 그렇다면 어떤 사람도 안받았으니까 0 ? 아니면 완전히 다른 어떤 수? 무엇이 더 좋은 답일까? 헷갈려어.

답을 제대로 찾으려면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정의'로 돌아가야해. 그래서 수학 공부할 때 '정의'를 제대로 알고 붙들고 있는게 참 중요해. 삼촌이 지금까지 '새로운 수가 필요하고 그것은 무엇이다' 라고 정의하면서 시시콜콜 몇 번의 편지에 걸쳐 이렇게 많이 말을 하고 있는 이유야. 잘못 이해하면, 첫단추가 잘못 꿰놓고 입은 옷처럼 옷모양새는 삐뚤어지고, 기초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집짓기 처럼 나중에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거든.

바로 어떤 정수 a , b 가 있을 때,

인 식을 만족하는 x 가 바로

라고 했다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기로 하자. 그럴 때, 0 이 참여하려면 어떤 경우가 있을까? a 와 b 의 배역을 맡기 위해 우리의 특별 배우 0 이 맡을 수 있는 자리는 두 곳이야.

  • a 의 배역만 맡는 경우,
  • b 의 배역만 맡는 경우,
  • a 와 b 의 배역을 한꺼번에 맡는 경우,

처음의 경우는 조금 나은데, 다른 둘은 문제가 있단다. 왜 그럴까?

잠깐! 멈추어 스스로 생각하고 위의 경우에 대해 어떻게 될지 공책에 적어보아라.

따져 생각하고 적어봤니? 이제 삼촌도 그 이유를 말해 볼께. 명훈히가 한 것이랑 한번 견줘 보고, 다른 생각이 있으면 답장할 때 꼭 전해다오. 먼저 첫째 경우, 이것은 달리 말하면, 예를들어 b 가 3 일 때,

을 참이게 하는 x 를 말한다. 그렇게 되는 수는 있을까? 물론이지. 0 이지 뭐. 딱 하나야. 분명하게 정해지지. 0 개의 떡을 두 사람에 나누건, 한 사람에게 나누건, 백 사람에게 나누건, 받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도 받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헷갈릴 이유 없지. 그런데 그렇게 만만할까?

어? 잠깐만요 ! 아니, 앞에서는

이라면, 0 = 1 이라는 말이 되고, 그래서 수학을 뿌리채 흔드는 거라면서요? 그럼 방금 했던 말도

이니까, 이것도 결국 수학의 뿌리를 뽑는 것이고, 더 나아가 뽑은 뿌리를 하늘에 대고 흔드는 것 아녜요?

분모, 분자가 모두 0 인 경우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으니 앞의 연속된 등식에서는 슬쩍 빼두었다. 앞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둘째 경우를 보자. 예를들어,

라는 식을 참이게 하는 바로 그런 x . 그런 x 가 있니? 없지. 있을 수 없어.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0과 곱해서 0 이 아닌 어떤 수가 나올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 어떤 수도 그럴 수 없어. 왜냐하면 바로 그게 0 과 곱셈의 성질이거든. 곱셈과는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 바로 0 이거든. 요새도 그렇게 부른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이런 경우를 '불능(不能)'이라고 불렀지. 앞의 식을 참이게 하는 x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뜻에게 그렇게 불렀나 봐. 어떻게 부르건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그런 x 가 없고 따라서 a 가 0 이 아닐 때,

라는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분모가 0 인 경우는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렇다면 세째 경우는? 일단 써 보자.

이야. 어때? 이것을 참으로 만드는 x 는 어떤 것이니? 우선 그런 x 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 있어. 1, 2, 3, .. 처럼 모든 자연수 다 돼. 그리고 그 상대편 -1, -2 , -3 , ... 모두 다 돼. 0도 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수가 다 돼. 그럼 x 는 뭐야 ? 도대체 뭐라는 거야?

누군가 명훈이에게 '너는 누구냐?' 라고 물었는데, 명훈이가, 한 번은 "저, 명이예요" 조금 있다가, "저, 훈이예요" , 그리고는 또 이어서 "사실은 저 명훈예요." 그리고는 "헤.헤. 저는 원일이 걸랑요" 라고 계속 바꿔가면서 말을 한다고 하자. 듣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니? 미칠 노릇이지. 분명히 누구이긴 누구일텐데, 도대체 그게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이런 경우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별 다를 게 없어. 달리 말하면, '정의가 되지 않음' 또는 '정할 수 없음' 이라고 하지. 있어도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한자로 '부정(不定)' 이라고 부르기도 해. 역시 어떻게 부르느냐는 중요한 건 아니냐.

여기까지 한 것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려볼까?

분모에 0 이 오는 경우는 없거나, 있어도 정해지지 않아서 의미없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꼴의 옷을 입은 수를 만날 때, 절대로 b 는 0 일수는 없다고 정하자. 괜찮지?


자, 지금까지 새로운 수의 탄생의 필요와, 특성, 그리고 정수까지 확장했을 때의 정확한 정의까지 이야기를 해왔다. 그렇다면 이제 '이것은 바로 수 !' 라고 확정해서 말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아직 다가 아냐. 한 고비를 더 넘어야 해. 생각할 게 많으니 다행인가?

핵심적인 이유야. 어떤 게 무엇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다른 것과 어울려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해. 마치 자연수가 있다고 해서 자연수가 짜잔~ 하고 있어지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유야. 자연수들끼리 서로 어울리면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 다시 말하면, 가장 기본적인 덧셈, 곱셈에 대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해져야 비로소 자연수가 자연수가 되는거지. 수만 그런게 아니지. 만약 명훈이가 혼자 뚝 떨어져서 있어. 원일이도 그냥 거기 그대로 있어. 그리고 엄마도 그냥 거기 그래도 있고, 명훈이 친구 K 도 그냥 거기 있다고 해 보자. 세상에 모든 것이 그냥 거기 있었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나. 나무가 있어. 새가 있어. 그냥 있어 아무것도 없어. 어울림이 없어. 그게 가능하겠니?

'매트릭스'라는 미국 영화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일본 영화를 보면 그런 장면들이 나오더라. 다른 모든 것은 멈춰져 버린 상태. 그런데 희한하게도 주인공들은 움직이긴 해. 삼촌 생각에 그건 억지 상상같아. 생각해 봐. 세상에 모든 것이 따로따로 어울림 없이 완전히 멎었는데 어떻게 그 안에 있는 하나가 움직일 수 있겠니? 세상에 모든 게 멎었다면 지금의 생명체가 있을 수 있겠니? 우주의 티끌만한 구석이라도 존재할 수 있었을까? 모두 서로 어울리고 섞이고 주고 받으면서 생겨나고 죽고 생겨나고 죽는 것이잖아.

말이 너무 거창해졌나? 에헴~. 뚝 끊자. 다시 돌아가자. 우리의

꼴의 수(투명인간)로. 다시 말하지만, a 와 b 는 정수야. b 는 0 이 아니어야 하고. 그런 수들이 둘 있다고 하고 어떻게 덧셈과 곱셈이 하는지 분명하게 정해주어야 비로소 이 수들은 진짜 수가 되고, 그래야 그 수들은 생명을 얻어서 훨훨 날 수 있게 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결과부터 말할까? 이미 알고 있을거야. 가장 기본인 덧셈과 곱셈에 대해서, 그 중 덧셈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말하기로 하자.

덧셈

a, b, c, d 가 정수인데, b, d 가 0 이 아닐 때,

야. 알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굳이 왜 이렇게 해야할까? 먼저 이 수를 탄생시킨 배경으로 돌아가 봐도 이게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가장 단순한 예를 볼까? 동그란 파전이 두 장 있다고 해보자. 하나를 똑같이 둘로 잘라. 그리고 다른 하나도 똑같이 둘로 잘라. 양쪽의 한조각씩을 더해. 어떻게 될까? 그렇지. 반쪽씩을 더하면 한쪽이 되는게 맞지. 이 경우를 우리가 쓰고 있는 기호로 쓰면,

이 되는 거겠지. 문자 기호로만 써보면,

가 될거야. 이제 조금 복잡한 경우를 볼까? 하나를 똑같이 세 조각 내서 그 중 둘 다섯 조각 내서 그 중 셋 을 더하는 경우를 보자꾸나. 달리 말하면,

의 계산 결과는 어떻게 될까? 바로 분모를 같게 할 수 있다는 데 착안해야지.

이고

이니까. 빨간 부분만 다시 건져내 보면, 결국,

요,

니까, 결국, 두 수를 더하는 문제도 훨씬 간단해졌어. 이렇게 하면 되겠지 ! (정수엔 교환 법칙이 성립하니까!!!)

됐니?

덧셈의 틀만 보기 위해서 다시 문자로 써 보면, 마침내,

가 되는 것이지. 이 때 절대로 b 도 d 도 0 이어서는 안돼.

완전하게 동그란 파전이 마음의 눈으로 보일 거야, 그렇지? 그런데 말야. 그 파전에는 파와 부침개가루, 물 말고 또 어떤 재료들이 들어가 있을까?

잠깐, 꼭 이렇게만 설명하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어. 그렇지 않니? 우리는 이미 a, b 의 배역을 맡을 배우로 자연수들만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 예를들어,

같은 경우는 위의 방식으로 설명을 할 수 없지. 게다가 본격적으로 새로운 '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떠나기로' 했으니까. 그렇다면 새로운 수들이 어떻게 덧셈이나 곱셈을 해나가는지 보기 위해서는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다. 몇가지 요건을 충족하도록 하는 것이지.

  • 그 수를 필요로 하게 했던 바로 그 이유를 충족하게 한다. 다시 말해, 파전자르기의 설명과 어긋나지 않게.
  • 그 수가 포함하고 이미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수의 법칙을 따른다. 다시 말해, 자연수와 정수의 덧셈과 곱셈의 성질이 여기서도 통하게.

지금 우리가 정의하는 수가, 자연수와 정수를 모두 담고 있다는 것은 뻔하지 않니?

는 모든 양의 정수(자연수)고,

은 모든 음의 정수고,

분모는 무엇이든 상관없이 분자가 0 인 수를 0

이라고 하면, 우리가 일구고 있는 새로운 수는 지금까지의 알고 있었던 자연수와 정수 모두를 포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는 훨씬 많아 보여. 왜냐하면,

처럼 사이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수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로 '훨씬 많을까?' 이것에 대해서도 나중에 또 말할 기회가 있을 거야. 앞에서 말했던 칸토르 할아버지 이야기와 함께 나올거야. 그때까지 잠시 기다리기로 하고 우리의 주제로 다시 돌아가보자.

우리의 새로운 수들이 이미 있는 것들을 포함했기 때문에 거기서 통했던 덧셈과 곱셈의 법칙이 여기서도 통하는 게 좋지. 아울러, 새로운 수를 나오게 했던 그 이유도 충족할만 하도록 새로운 수들의 덧셈과 곱셈도 그렇게 작동하면 좋아. 앞의 우리의 덧셈 정의는 충분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덧셈의 순서를 바꾸어도 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교환과 결합 법칙이 여전히 성립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 간단히 기호로 쓰면,

이니까 교환법칙이 성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덧셈은, 우선, 잘되었어 ! 다음 결합 법칙은? 이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를 보야야 할 거야.

무척 귀찮을지 모르지만, 꼭 한 번은 앞의 내용을 스스로 보이거라.


곱셈

그럼 곱셈은? 어떻게 할까? 곱셈은 설명이 무척 난처해. 억지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무척 길어질 것 같아. 그래서 짧게 그 결과만 말할께.

a, b, c, d 가 정수고 b, d 가 0 이 아니라면

가 돼. 이때도 역시 곱셈의 순서를 바꾸어도 아무 문제 없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

(곱셈의 교환)
(곱셈의 결합)

게다가, 덧셈과 곱셈이 어우러질 때의 법칙인 분배법칙도 아무 문제 없이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앞에서 한 말들이 항상 참이라는 것을 스스로 보이거라.

다시 말해,

를 보이라는 말이지. 지금 바로 해보면 더 좋겠구나. 무엇이든 처음 만났을 때 이해해버리는 것이 좋거든. 나중으로 미루면 다시 안보게 되는 경우가 잦거든. 그러다가 그게 언젠가 돌부리처럼 넘어뜨릴 때도 있지. 지금 직접 보이는 것이 가장 좋긴 하지만, 만약 지금 도저히 모르겠다 하는 경우엔 우선 넣어둬도 괜찮아. 나중에 다시 이 편지를 꺼내 직접 해보기만 한다면. 언젠가 한번은 꼭 스스로의 힘으로 보여 봐라. 이런 훈련이 당장 시험에 도움을 주지는 않겠지만, 직접해보면 수학의 내공이 푹푹 쌓이지. 그리고 수학의 내공이 듬뿍 쌓일 때는 시험은 잘 볼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 이미 다른 과목을 잘하는 것에 까지 영향을 준단다. 더 나아가 살다보면 전혀 예상치도 않은 곳에서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해.

억지처럼 들린다고? 삼촌을 믿어다오. 명훈이에게 삼촌이 왜, 무슨 이유로, 뭐가 좋다고 거짓말을 하겠니? 뭐하러 괜시리 안해도 될 일을 시키면서 귀찮게 하겠어? 그렇지 않니?

자, 마지막으로 뺄셈과 나눗셈을 보이고 끝내자. 지금까지 해 오는 동안 충분히 익혔겠지만, 뺄셈이란 덧셈의 거꾸로, 나눗셈은 곱셈의 거꾸로야.

일 때의 x 를 찾는 셈이 뺄셈이고,

일 때의 x 를 찾는 셈이 나눗셈이지. 다시 말하지만, b, f 는 0 일 수 없어. 그 경우만 빼면 정수 어떤 것이든 다 돼.

그런 x 를 찾는 방법(알고리듬)은 많이 있을 수 있지. 하지만, 학교에서 이미 배운대로 바로 이렇게 하면 충분해.

야.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새롭게 넓어진 덧셈과 곱셈의 정의를 잘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거야. (직접 따져 보거라.)

비로소 우리는 다 왔어. 편지 세 통에 걸쳐 지루하리만큼 느릿느릿 왔어. 따질 것 다 따져 가면서 마침내 도달한 거야. 이제 정수 a 와 b 두 수의 관계를 단칼에 드러내면서, (b는 0 이 아니야!)

의 어떤 식도 참인 x 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수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려 '행동하는지' 까지 알게 되었어. 비로소 진짜 수로 생명을 얻은 거지. 경사 났지. 우리의 지평은 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넓어지고 촘촘해졌어. 지난 편지를 다시 꺼내 보면서 이것들이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다시 슬쩍 보기 바란다. 정수로 확장해서,

인 식이 참이 되도록 하는 x 를 항상 찾을 수 있도록 보장받았고, 바로 지금까지 새로운 수로 확장하면서

인 식이 항상 참이 되도록 하는 x 를 항상 찾을 수 있도록 보장받았어. 까칠하게 따지면서 힘겹게 힘겹게 왔지만, 이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와졌니? 생활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셈들인 덧셈, 곱셈, 뺄셈, 나눗셈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땅에 들어선거야. 경사난 거 맞지? 축하하기로 하자. 축하하는 의미에서 이 '새로운 수'를 어떻게 부르는지 진짜 이름을 알려줄께.

그것은 바로 유리수 야. 우리말로 번역되면서 조금 이상해지긴 했지만, 문제는 없어. 고대 그리스 말이 번역 되고 번역 되면서 지금 영어로는 rational number 라고 하고 이것을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유리수'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지. 그 단어 안에 있는 'ratio' 란 '비례'를 뜻하는 말이야. 그래서 이 단어의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있지? 유리수가 탄생하게 했던 이유가 바로, 두 수 a 와 b 의 비례를 드러내려는 필요에서 나왔잖아. 그러니 그런 이름을 붙여준 게 맞지.

아. 기나긴 길을 온 것만 같구나. 게다가 오늘 편지는 문제 풀 것은 별로 없고, 엉덩이 떡 붙이고 앉아 꼼꼼히 생각해야 하는 게 많아 읽기 더 거북했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었어. 먼 길을 가다보면 아름답고 재미난 풍경도 있지만, 퍽퍽한 길을 땀 뻘뻘 내며 걸어 올라가거나, 건너기 힘든 강을 건너야 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힘들다고 피해가서는 제대로 길을 갈 수 없지. "수학에는 왕의 길(王度)가 없다." 는 것이 바로 그것이야. 수학만 그런 것이 아니야,운동을 배워도 그렇고, 악기를 배워도 그래.

그래도 훨씬 더 쉽고 재미나게 설명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여기까지 기왕에 왔으니 일단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기로 하자. 이제 수를 더 확장하는 것은 잠시 미루고, 지금까지 우리가 일궈놓은 수의 세계 '안'에 과연 어떤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꾸나. 지금까지는 망원경으로 보았다면 이제는 돗보기를 들어야 할 때야. 때로는 현미경이 필요할 거야. 이제 문제 풀 것들도 많아져. 문제 푸는 재미가 솔솔 할테니 기대해도 좋다.

그럼 오늘은 삼촌, 이만 물러간다~

마침내, 유리수까지 와서 한 숨 내쉬면서, 삼촌이


수학 편지 대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