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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수학이나 과학이 유럽 수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건, 제가 알기론, 로바쳅스끼(1792-1856) 전 후 19C 중반입니다. 역사를 잠깐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러시아의 통치자 중 '대제'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은 둘 있습니다. 뾰뜨르 대제와 에카쩨리나 대제 입니다. 이 분들의 정치적 역정이나 개인적 역사적 드라마가 가지는 비극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하고, 이 분들 시절에 학문과 관련한 사건들을 몇개 보겠습니다.

뾰뜨르 1세, 또는 뾰뜨르 대제(1672–1725)는 러시아의 개혁가였습니다. 당시 선진국이던 네델란드에 가서 몸소 서유럽에서 일하고 문화를 체험하고 돌아와 대개혁을 감행합니다. 이 시기 학문과 관련해서 그가 했던 큰 일 중의 하나는 지금의 러시아 과학아카데미(학술원)을 만든 일입니다. 그 과학아카데미에 유명한 수학가문 Johann Bernoulli의 두 아들 다니엘과 니콜라스가 와 있었죠. 다니엘이 초빙한 사람이 바로 오일러(1707 – 1783) 입니다. 처음엔 대접을 그다지 잘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1727년, 그러니까 오일러가 고작 스무 한 살도 채 안된 나이에 교수로 초빙되어 1741년 프러시아로 돌아갈 때까지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합니다. 1733년에 오일러는 수학부를 맡게 되구요. 이듬해 결혼도 합니다. 1741년 베를린으로 돌아갔다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노년으로 접어든 1766년 뻬쩨르부르크 학술원의 초빙을 받아 다시 돌아옵니다.

이때 통치자는 에까쩨리나 대제(여제, 독일인으로 러시아 황제였던 남편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였습니다. 에까쩨리나 대제 시기에 중요한 학문적 사건은 모스크바 국립대학을 열었다(1755년)는 것입니다. 그 기초를 다진 사람은 시인, 화가, 교육, 언어, 과학 전 분야에 백과사전과 같았던 로모노소프 입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을 일명 로모노소프 대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러 사례에서보듯 오일러는 남을 칭찬하길 좋아했습니다. 특히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그랬으니 그로부터 배웠던 사람들이 요소요소에 퍼지고 학문적 토양에 크든 작든 태양이나 씨앗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억지가 아니겠죠. 오일러는 뻬쩨르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하고 묘소도 그곳입니다.

이야기를 조금 건너뛰어보겠습니다. 까잔이라는 도시는 모스크바에서 약 800 km 떨어진 동쪽에 있는 도시 입니다. 이슬람 문화와 러시아 정교회 문화가 어울려 있는 곳입니다. 까잔 대학은 180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로베쳅스끼가 대학에 들어간 건 그로부터 3년 뒤입니다. 중고등학교에서 뛰어난 수학선생님을 만나 수학에 대단한 흥미와 재능을 보였던 그는 처음엔 복이 없어서 수학부에서 흥미를 못느꼈습니다. 나중에 가우스의 학교 선생님이자 친구였던 교수가 오고 독일의 뛰어난 교수들이 초빙되고 나서야 다시 수학에 놀라운 재능을 보입니다. 학교에서 몇 번이나 경고를 받았던 그를 적극 보호하고 나선 사람들도 그들이었습니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행정가가 어떻게든 그를 퇴학시키려고 했는데, 그것을 막은 까잔 지역 행정부서 고관도 개인적으로 오일러를 알고 수학과 학문 세계를 존경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로바쳅스끼는 1814년부터 까잔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1822년 정식 교수가 됩니다. 교수 시기에 학생들로 부터는 굉장한 인기 교수였지만,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학교측과 몇 번 충돌이 있었습니다. 하마트면 교수직을 박탈당할 위기도 있었구요.

그러던 그가 까잔 대학의 총장이 되어 활동한 시기는 1827 년 부터 1846 퇴직때 까지 입니다. 1826년 최초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서 발표를 했고 평생 그것을 지키느라 싸우면서 보내면서도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총장이자 교수 였다고 합니다. (레프 똘스또이가 1844년 까잔대학을 입학했으니 몇 년 겹치는군요).

어쨌든 당시 자연과학 연구의 중심지 괴팅겐 대학의 가우스가 로바쳅스끼의 논문을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했다고 할 정도이니, 러시아 수학의 위상이 로바쳅스끼로부터 얼마나 높아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당시 러시아는 뿌쉬킨 전후 문화 전분야와 자연과학, 사회과학 분야에서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비록 사회주의 혁명으로 사회가 급변하면서 수많은 학자들이 서방으로 떠나지만 그 흐름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는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그 흐름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라성 같은 화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지질학자... 들이 등장하면서 '러시아 학파'를 형성합니다. 수학 분야로 좁혀 보더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2006년 작년 필즈상을 받은 두 명의 러시아 (한 명은 모스크바, 한명은 뻬쩨르부르크... 뻬쩨르부르크의 뻬렐만은 수상을 거절했습니다.) 출신 수학자 기사를 보고 였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몇마디. 물론 노벨상도 그렇고 어떤 '상'이 그 나라 학문이나 문화의 척도라고 말하기엔 위험한 구석도 없지않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필즈상 수상자들이나, 힐버트가 1900년에 낸 문제에 대한 해결에 대한 공헌이나, 수학계의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러시아 수학이 도달한 수준은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그것을 위해 한 사람 더 언급해야겠습니다. 루진(1883 - 1950) 이라는 수학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제자와 그 제자의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의 거대한 나무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 한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다른 분들도 많습니다만, 그 분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 합니다. 한마디로 현대 수학계에서 러시아 학파라는 집합과 루진의 제자와 동료들의 집합이 거의 겹친다고 할 만큼 대단한 역할을 했던 분입니다. 특히 이 분은 모스크바의 중심지이자 유명한 거리 아르바뜨에서 살았는데 이 분의 집은 '모스크바 지식인들의 모임 장소'였다고 합니다. 문화나 학문에 대한 토론이 끊이지 않았고 세대를 넘나들었습니다.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크는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에서도 학문적 풍토가 조금은 다른 곳으로 인정합니다. 저는 모스크바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모스크바 이야기만 할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수학부에서 보냈던 6년의 기억과, 그 후 한국에 돌아와 모스크바 중고등학교 중 유명한 곳들을 자주 다니면서 느꼈던 것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자주 질문을 받곤 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 수학과 수학자를 바라보는 문화가 다릅니다. 수학자나 수학을 한다면 그는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우리처럼 수학과를 다니는 것이 별종 취급되지는 않습니다. 여행을 하다가도 수학부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려 줍니다.
  • 어린 아이들의 수학 교육에 교수 교사의 구분이 없습니다. 연구자이면서 교사인 사람들이 많고 그들은 아이들이나 일반 교사에게 수학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수많은 교재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도 잡지, 소단행본, 큰 책, 번역본, 집필 그 다양성과 풍요로움은 우리로서는 부럽기만 합니다.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사람이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어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 모든 시험 문제들은 그때그때 새로 만들어지고 바로 공개 되고 검증합니다. (얼마전 성대 석궁사건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학생들이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수학 캠프, 올림피아드, 수학 축제, 수학 논문 발표들이 있습니다.
  • 수학부가 아니라도 수학이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입니다. 왠만한 자연과학부들이나 사회과학 하는 학부들은 1학년 2학년 때 수학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 수학부 안에 인적 구성이 풍부합니다. 제가 다니고 있던 모스크바 국립대학 수학부는 그 안에 약 20개의 단과가 있습니다. 그 20개의 단과 안에는 정부교수가 수십명씩 입니다. 우리 개념의 박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우 아니면 바로 수업 기회가 주저지지 않습니다. 수학 연습(이를 세미라 라고 부릅니다)도 마찬가지 입니다. 대부분이 우리로 치면 조교수 급 이상입니다. 그리고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의 벽이 높지도 않습니다. 최근에는 사회가 바뀌면서 사회적 지위나 보상이 다르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본인이 굳이 뜻이 없다면 나이가 많고 학문적 성과가 있어도 그냥 조교수로 있는 실력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 수업의 양이 많습니다. 제가 가본 수학에서 유명한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크의 중고등학교를 가면 수학의 정규 수업량이 많고 입학할때 수학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정규 수업 말고 일과가 끝나고 수학 동아리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금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굳이 그 학교 학생이 아니더라도 그 학교의 우수한 교사들이 여는 수학동아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 자료를 공개합니다. 저작권 개념이 이제서야 퍼지고 있지만, 사실 지금도 새로 쓴 책들 중에는 무료로 다운받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고 예전 책들 중 유명한 책들은 대개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볼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는 몇년전부터 학교 프로젝트로 유명한 대학교재들을 파일 형태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재들이나 보충교재들도 중요한 책들은 대부분 이미 파일 형태로 되어 인터넷에 떠 있습니다.
  • 수학 공부의 방법이 다양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여러 단체나 학교에서 여는 수학 축제나 캠프에는 수십명의 교수/교사들, 박사과정, 학생들이 참여하여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재능이 별난 아이들은 주목 받고 서로 교류 합니다. 편지를 통해서 하는 원거리 교육 제도도 오래전부터 발달했습니다. 지금 그것을 온라인 형태로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학 잡지도 많고 수학 교사를 위한 신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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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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