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 dau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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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악 등을 공부한 윤씨는 22살 때인 1972년 프로그레시브 록(전위적인 록) 밴드인 포폴부(Popol Vuh)에 참여한다. 67년 플로리안 프리케라는 이가 주도해 만든 이 밴드가 윤정의 참여 이후 내놓은 첫 음반이 〈호지아나 만트라〉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 음반은, 프리케의 재능과 신비스럽고 순수한 윤정의 소프라노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탄생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과테말라에서 마야문명을 꽃피운 키체족의 경전인 ‘포폴부’의 뭔가 신비스런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프리케는 89년의 한 인터뷰에서 “〈호지아나 만트라〉에서 노래를 부른 순수한 목소리의 그 여성은 누구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젊은 한국 여성이다.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의 딸이기도 하다. 그녀는 정말 천사 같은 목소리를 지녔다.” 1980년대 심야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포폴부의 음악에 빠졌던 글쓴이로선 ‘천사 같은 목소리’라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76년까지 이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그만둔 윤씨는 79년에 한번 더 음반 제작에 참여하곤 음악계를 떠났다. 한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애호가들에게서도 서서히 잊혀져 가던 그가 지난달 아버지의 10주기를 맞아 이 땅을 찾았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음악을 포기한 게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깊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이상의 딸이 그런 것도 모르냐”라는 말을 들을까봐 겁이 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정씨는 ‘윤이상의 딸’ 이전에 70년대 ‘록 음악의 르네상스 시대’가 꽃피는 데 기여한 뛰어난 음악인으로 기억되어 마땅하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 그가 가슴에 품고 있는 숙제는 아버지가 남긴 육성 테이프를 듣는 일이다. <상처 받은 용>이란 제목의 윤이상 전기를 쓴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그와 대화한 20여개의 테이프가 그것이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이 테이프를 딸인 윤씨에게 건네줬다고 한다. 아버지의 육성을 듣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까지 ‘10년 숙제’로 남겨 왔으나, 평양~베이징~서울~베를린을 잇는 이번 연주회 여정이 마무리되면 윤씨는 숙제를 마치기 위해 아버지의 고향인 통영 부근의 외딴 섬을 찾을 결심이다.

“아마 십년 묵은 통곡을 쏟아놓게 될 겁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스스로 남긴 귀중한 자료인 이 테이프를 들으면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는 곧 음악이었고, 음악은 곧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의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한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땐 아버지가 거기 서 계시다는 전율에 사로잡혀 한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미국 뉴욕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윤씨는 귀금속을 주제로 한 금속공예 대신 이를 서민예술로 표현하는 길을 찾다가, 독일에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부름을 받았다. 서둘러 베를린의 집으로 날아갔을 때, 그는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가 통곡하는 걸 보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는 뉴욕의 작업실로 돌아가지 못했고, 결국 ‘아버지 사업’에 뛰어들어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일본, 미국, 독일 등지에서 ‘윤이상 추모 음악회’ 등 기념사업을 조직하고 후원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