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는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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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화된 다른 수업들처럼 동아리 역시 규칙적인 공부의 한 방법이다. 사실상 아이들과 공부하는 것이라면 굳이 동아리를 만들지 않고도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시간 되는대로 아이들에게 묻고 과제를 주고 뭔가 함께 토론하면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안된다. 그리고 모든 계획은 유토피아였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어제는 시간이 없었고 오늘은 할 기분이 아니거나 피곤하고... 그리고 아예 이렇게 된다. ' 아니 왜 굳이 지금, 이 시간에 해야하지? 아직 시간은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조만간에 어떻게 시간이 되겠지...'

그 결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일 오전 11시에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올 것이고 최소한 30분은 그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는 것을 당신이 안다면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당신은 홀로 구석자리로 가서 무언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혼자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책들을 들추어 보아야 한다. 골똘히 무언가를 놓고 생각한다면 이르건 늦건 기막힌 생각이 머리에서 번뜩이게 된다. 어떤 환경의 압박이 없었다면 절대 떠 오르지 않았을 그런 생각이.

아니면, 예를 들어 당신이 새로운 생각을 해 냈는데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물질적인 준비”를 요구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자르던지, 그리던지, 붙이던지... 그러한 “가족을 위해 하는 노동”에 자신을 내 맡기기 위해서는 그저 머리속에서 날아다니는 어떤 그럴싸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는 안된다. 그보다 더욱 엄격하고 더 구체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게다가, 아이들의 행위가 어떤 형식적인 틀과 함께 병행하는 것을 아이들도 더 좋아한다. 만약 어른들이 느닷없이 아이들로 하여금 무작정 놀이를 멈추고 무슨 문제들을 들이댄다 치자. 아이들은 금방 쉽게 분노하고 어서 빨리 이 강압적인 과제로부터 벗어나길 원할 뿐이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번 정해진 시간에 모두 함께 모여서 무언가 진지한 것을 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로 이것이 첫 번째 질문인 “왜 동아리를 열었는가?”에 대한 간단한 답이다.


일기에 관해서 말하자면 사실 처음에는 일기라는 걸 기록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과의 수업에 특별히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독자들이 보게 될 테지만 일기는 스물 한 번째 수업부터 기록하고 있다. 첫 “20 주”는 사실 5개월이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사실상 10개월에 해당한다. 이 기간 동안에 여름 방학이 있었고 다양한 이유로 수업을 빼 먹기도 했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수업을 갖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늘 정확하게 이 결정에 따라 수업을 진행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데 나중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과의 수업을 시작한지 약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내 친구들 몇 명이 나에게 우리가 수업을 무엇으로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물어온 것이다. 나는 반갑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과 과제들이 줄기차게 흘러나오는 것 대신에 그만 입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나는 모두 잊어버린 것이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거의 다 잊어버린 셈이었다. 내가 잘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수업 시간 내내 나와 함께 했었던 어린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이었다. 여기에 구체적인 실례가 있는데 Извилин을 이야기 하다가 옆 길로 샌 적이 있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려고 다리를 잃은 장애인들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들에게는 실제로 다리는 없지만 여기에 다리가 있다는 그런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 기억력이 그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당황했고 실망스러웠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나는 아직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간단하게나마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종의 수업 계획서와 같은 것을 써 보기로 결심했다. 과제 목록만 쓴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토대로 나머지 내용들을 기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수업 계획서를 쓰면서 나는 이미 «나머지 내용»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이미 본능적으로 «과제 목록»만으로는 불충분함을 깨달았던 것 같다.

곧이어 나는 교육학 분야에서 내 생애 첫 «이론적인 발견»을 이루었다. 나는 스스로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깨달았다, 느꼈다?). 진정으로 흥미로운 것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어떤 조건도, 그것의 결과도 아닌 바로 과정,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그 길인 것이다. 여러분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취학 전 아이들이 풀 수 있는 수학 문제라는 것이 사실상 아주 단순하다는 것을 말이다(그 문제들을 생각해 내는 과정만은 단순하지 않다). 다른 한편 문제를 풀어서 결과를 도출해 내는 데까지 이르는 시간은 충분히 몇 년이고 걸릴 수도 있다. 정말이다. 놀라지 마시라. 몇 년이고 걸린다. 여러분들은 그와 관련된 방대한 예들을 또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시간 동안에 아이의 지성은 잠자지 않는다. 아이의 지성은 내가 내어준 문제들을 포함하여 그의 관심의 범주에 들어온 모든 것들 주위에서 “마치 뜨거운 석탄처럼” 들썩거리고 끓어오른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우리들의 대화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것이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의 “문제 목록”은 더욱더 많은 양의 해설과 이야기, 유머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때때로 수학과 관련된 주제 뿐만 아니라 어떤 보편적인 이야기들과 “이론들” 역시 첨가되면서 점차적으로 이 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접어들었다. 즉 동아리와 일기 사이에 상호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내가 본 것, 생각한 것을 기록하다 보면 자연스레 새로운 생각들, 변경 가능한 내용들이 생각났고 새로운 [문제,과제]들, 수업 내용들이 떠 올랐다. 내 사고는 더욱 깊어져 갔다. 심지어 관찰력 마저 날카로워졌다. 때로는 시끄러운 수업 시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서 바로 기록해 두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릴 법한 일들이 기억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에는 {수업과 일기 사이에} 서로 없으면 안 될 일종의 공생관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штрих. 시간은 흘렀고 아이들은 자라서 나의 일기를 읽었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많은 것을 잘 기억하고 있고 어떤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항상 나와 똑같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심지어 때로는 나와는 정반대로 사건을 인식하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해설을 일기에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하여 전체 프로젝트를 더욱 대화적으로 만든 보완된 차원의 일기가 생겨났다. 내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이렇게 하여 스테레오 스피커의 효과가 생겨나게 되었다.

유아와 수학 : 서론 | 제1장 | 제2장 | 제3장 | 제4장 | 제5장 | 제6장 | 제7장 | 제8장 | 제9장 | 제10장 | 맺음말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