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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 신기섭씨가 쓴 논설이 마음에 들어 옮겨 놓고 읽기로 한다.



몇 해 전 일제의 ‘자살 특공대’인 가미카제를 분석한 책의 서평을 보고 피식 웃은 적이 있다. 특공대원들이 비행기에 몸을 싣고 미군 군함으로 돌진한 것은 광기에 눈이 먼 탓일 거라는 통념을 깨는 책이라는 설명 때문이었다. “이른바 ‘통념’대로 그들이 광기에 눈이 멀었다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두려운 건, 그들이 멀쩡한 사람들이었다는 데 있다.” 당시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가미카제를 잘 알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은 다 비슷할 거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가미카제를 거론하는 건 지방선거 이후 독일로 자꾸 눈길이 가는 탓이다. 월드컵 축구가 열리는 지금의 독일이 아니다. 히틀러가 지지층을 확대해가던 1930년 초반의 독일이다. 당시 상황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1차 세계대전 패배 여파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29년 세계적인 대공황이 몰아쳤다. 그러니 대중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혼란스런 나라를 수습할 것 같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능하기만 했고, 정치 세력은 뿔뿔이 나뉘었다. 그 사이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목소리들이 계속 커져갔고, 대중은 급속히 나치에게 기울었다. 히틀러에게 표를 던진 대중들은 어떤 심리였을까?

요즘 우리 상황도 비슷한 면이 꽤 있다. 외환위기 뒤 나아지는가 싶던 체감 경기는 급속도로 나빠져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는 무기력에 빠졌다. 그리고 지난달말 지방선거는 최근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싹쓸이’로 끝을 맺었다. 또 어쩌다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는가. 물론 당시 독일과 지금 한국은 비슷한 점만큼이나 다른 점도 많다. 그러니 단순 비교만으로 어떤 결론을 낼 수는 없다. 그래도 사람은 다 비슷할 거라고 보면, 대중이 느끼는 심정만큼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역시 절망감일 것이다. 그저 눈앞 현실에 대한 좌절이 아니라, 막 자라나던 자부심이 무너지면서 밀어닥치는 절망감이다. 그래서 더욱 쓰라리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자부심은 빠르게 커졌다. 정치적으론 민중의 힘으로 독재를 굴복시켰고 마침내 정권 교체도 이뤄냈다. 경제도 비록 외환위기라는 굴곡을 겪었으나 그럭저럭 회복됐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세계 10대 경제권이자 정보통신 강국이다.

그러나 막상 대다수의 삶은 영 딴판이다. 혹시라도 전세금이 오르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에게 ‘부동산 세금 폭탄’ 운운하는 소리는 딴 나라 이야기고, 키워줄 사람이 없어 아이 낳는 걸 뒤로 밀어둔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 낳아 잘 키우는 것이 애국”이라는 말은 가슴을 후비는 비수가 된다.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불안한 부모 곁에서, 변변한 일자리의 꿈이 사라져가는 자식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도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여당은 기껏 부동산 정책 후퇴안을 대책이라고 거론한다.

그러니 잠시나마 짜증나는 정치를 월드컵 열기로 덮어버릴 수 있는 게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거리 축제가 모두 끝난 뒤엔 꼬질꼬질할지언정 삶이 다시 이어져야 한다. 가미카제처럼 사뿐히 던져버리기엔, 히틀러 같은 가짜 구세주에게 내맡기기엔, 아깝고 소중한 삶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에게 떠넘기지 말고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희망 만들기는 이웃도 나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자각과 공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함께 고통받는 이들의 작은 공동체’가 하나둘 모이는 것, 진보가 가능하다면 그 밑바탕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 대추리 주민 김택균씨는 “2002년에는 동네 청년들이 모여앉아 함께 응원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며 썰렁해진 마을 분위기를 아쉬워했다. 하지만 김씨는 “한국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나라 전체가 기분이 좋아져 대추리 문제도 잘 풀리지 않겠느냐. 우리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길 빌고 있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 윤선옥 케이티엑스 승무지부 부대변인은 “나도 2002년 월드컵 때는 축구가 세상에 전부인 것처럼 즐겼고, 이번에도 한국의 승리를 응원할 것”이라며 “생존을 위해 힘들게 투쟁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으로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뒤 항의농성을 계속해온 시각장애인들은 “다른 국민들과 더불어 월드컵 축제에 동참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비애를 느낀다”며 투쟁을 중단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 방글라데시 출신의 샤킬(40) 이주노조위원장 전 직무대행 “이렇게 어울리다 보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

조혜정 이재명 김소연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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