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615-2

DoM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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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쓰고 교수 박희병씨가 번역한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옮겨 적음. 연암을 읽는다라는 책에 있는 연암의 글 모두 뺄 게 없지만, 왜 하필 이 글을 여기에 옮기냐, 왜냐, 왜냐... 좋아서, 좋고도 너무 좋아서지. (괄호는 본문해설을 참조하여 내가 넣었음)


푹푹 찌는 더위에 형제분들은 두루 평안한지? 성흠(이희명)은 근래 어찌 지내고 있나? 늘 생각하며 잊지 못하네. 존중(이재성)과는 이따금 만나 술잔을 나눌 테지만 백선(?)이 靑橋를 떠나고 성위(이희경)도 泥洞에 없으니 이처럼 긴긴 여름날 무엇으로 소일하는지 모르겠군. 듣자니 재선(박제가)이 이미 조강지처를 잃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무관(이덕무)같은 좋은 친구마저 잃고서는 막막한 이 세상에 외로운 신세가 됐으니 그 모습과 언사는 보지 않아도 알만하거늘, 정말 천지간의 궁한 사람이라 하겠네.

아아 애통한 일일세! 내 일찍이 벗 잃은 슬픔이 아내 잃은 슬픔보다 훨씬 크다고 말한 적이 있네. 아내를 잃은 자는 두 번, 세 번 장가를 들 수도 있고 서너 차례 첩을 얻는다 해도 안 될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솔기가 터지고 옷이 찢어지면 깁거나 꿰메면 되고, 기물이 깨지거나 이지러지면 새것으로 바꾸면 되는 것과 같은 걸 테지. 혹 뒤에 얻은 아내가 전처보다 나을 수도 있고, 혹 자신은 늙었더라도 새 아니는 어리고 예뻐 신혼의 즐거움이 초혼 때와 차이가 없을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벗을 잃는다면 행여 내게 눈이 있다 하나 내가 보는 것을 뉘와 함께 볼 것이며, 행여 내게 귀가 있다 하나 뉘와 함께 들을 것이며, 행여 내게 입이 있다 하나 내가 맛보는 것을 뉘와 함께 맛볼 것이며, 행여 내게 코가 있다 하나 내가 맡는 향기를 뉘와 함께 맡을 것이며, 행여 내게 마음이 있다 하나 장차 나의 지혜와 깨달음을 뉘와 함께하겠나?

종자기鍾子期가 세상을 뜨고 백아伯牙는 자신의 금琴을 끌어안고 장차 뉘를 향해 연주하며 뉘로 하여금 감상케 하겠나? 그러니 허리춤에 찼던 칼을 뽑아 단번에 그 다섯 줄을 끊어 버려 쨍 하는 소리가 날밖에. 그러고 나서 자르고, 끊고, 냅다 치고, 박살내고, 깨부수고, 발로 밟아, 몽땅 아궁이에 쓸어 넣고선 불살라 버린 후에야 겨우 성에 찼다네. 그리고는 스스로 물었다네. "속이 시원하냐?"

"그래 시원하다. "

"엉엉 울고 싶겠지?"

"그래, 엉엉 울고 싶다."

그러자 울음소리가 천지를 가득 메워 종소리와 경쇠 소리가 울리는 것 같고, 흐르는 눈물은 앞섶에 뚝뚝 떨어져 큰 구슬 같은데, 눈물을 그리운 채 눈을 들어 바라보면 빈산엔 사람하나 없고 물은 흐르고 꽃은 절로 피어 있었다네.

내가 백아를 보고서 하는 말이냐구? 그럼, 보다마다 !


  • 자르고, 끊고, 냅다 치고, 박살내고, 깨부수고, 발로 밟아 부분 원문 : 斷之, 絶之, 觸之, 碎之, 破之, 踏之
  • 종자기鍾子期와 백아伯牙 고사 : 백아가 금을 타고 종자기가 그 소리를 들었다. 백아는 태산을 생각하면서 금을 탔다. 그러자 종자기가 말했다. "참 좋구려, 연주하는 소리가! 그 우뚝한 느낌이 마치 태산과 같구려."조금 있다가 백아는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금을 탔다. 그러자 종자기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참 좋구려, 연주하는 소리가! 그 넘실거리는 듯한 느낌이 마치 흐르는 강물과 같구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의 금을 부수고 줄을 끊어 버렸으며 죽을 때까지 다시는 금을 연주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자신의 금을 들려줄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워넌 3세기 진나라시대 여씨춘추에 수록된 이야기를 번역자가 옮겨 놓은 것을 내가 이리 옮겨 씀)
  • 빈산엔 사람하나 없고 물은 흐르고 꽃은 절로 피어 : 원문은 空山無人, 水流花開. 소동파가 도를 깨달은 사람의 경지로 씀. 여기서는 달리 읽힘.
  • 水流花開 는 내가 무지 좋아하는 말 중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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