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6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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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문학론의 핵심 법고창신론이 담긴 글. 자칫 옛것을 잘지키면서 새것을 받아들인다 정도로 순진하게 받아들여 법고창신론이 뭐 대단할 것 있나 했는데 이 글과 해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글쓰기 읽기 경험과 문학론에 대한 역사적 고찰,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사유가 깊었나 놀라워. 놀라와서 여기에 옮겨두기로 한다. 무릎을 치며 아하! 방안을 서성이다 또 아하! 그렇구나.


문장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반드시 옛것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마침내 옛것을 모방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주나라의 제도를 본떴던 역적 왕망이 예악(禮樂)을 수립하였다는 격이며, 공자와 얼굴이 닮은 양화가 만세(萬世)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격이다. 그러니 어찌 옛것을 모범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새것을 만들어야 하겠지. 그리하여 세상에는 마침내 괴상하고 허황되고 지나치고 치우친 글을 쓰면서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이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는, 임시 조처로써 세 길 높이의 나무를 옮기게 함이 동상의 법령보다 중요하다는 격이고, 이연년의 새로 만든 간드러진 노래가 종묘(宗廟)의 음악으로 연주되어도 좋다는 격이다. 그러니 어찌 새것을 만들겠는가?

그렇다며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우린 장차 어찌해야 하는가? 글쓰기를 그만두어야 할 것인가?

아아! 옛것을 모범으로 삼는 사람은 낡은 자취에 구애되는 것이 병이고, 새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것이 탈이다. 참으로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내되 법도가 있게 할 수 있다면, 지금 글이 옛날 글과 같을 것이다.

옛사람 중에 글 잘 읽는 이가 있었으니 공명선(公明宣)이 그 사람이요, 옛사람 중에 글 잘 쓴 이가 있었으니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이 바로 그 사람다. 어째선가?

공명선이 증자(曾子)에게 배우면서 3년이 지나도록 책을 읽지 않았다. 증자가 그 이유를 묻자 공명선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선생님께서 평소에 댁에서 지내시는 모습도 보고, 손님을 접대하시는 모습도 보며, 조정에서의 모습도 보면서 배우고 있으나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 문하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강을 등지고 진을 치는 법은 병법에 안 보이니 장수들이 복종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이에 회음후는 이렇게 말하였다.

"병법에 들어있는데, 제군들이 제대로 보지 못했군. 병법에 '죽을 땅에 들어간 다음에야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배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잘 배웠다고 할 만한 것은 노(魯)나라의 어떠 남자가 혼자 거처한 일이요, 아궁이 수를 줄이는 전술을 역이용해 아궁이 수를 늘림으로써 적을 속인 것은 우승경이 보여준 변통이다.

이로써 보건대, 하늘과 땅이 비록 오래되었어도 끊임없이 만물을 낳고, 해와 달이 비록 오래되었어도 그 빛은 매일 새로우며, 세상에 책이 비록 많으나 담고 있는 뜻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날짐승, 물짐승, 길짐승 중에는 혹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는가 하면, 산천초목에는 반드시 숨겨진 신령함이 있게 마련이다. 썩은 흙에서 지초(芝草)가 돋고, 썩은 풀에서 반딧불이가 생겨난다. 예(禮)를 둘러싸고도 시비가 끊이지 않고 악(樂)에 대해서도 논의가 분분하다. 낙서(洛書)도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았고 하도(河圖)에도 모든 뜻이 다 드러나 있지 않다. 그리하여 똑같은 대상을 두고도 어진 사람이 보면 어질다고 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보면 지혜롭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므로 "백세(百世) 뒤의 성인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내 말에 의혹을 품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은 앞 시대 성인(聖人)의 뜻이요, "순(舜)임금과 우(禹)임금이 다시 살아난다 할지라도 내 말을 바꾸시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후대 현인(賢人)의 말이다. 우임금과 후직과 안회는 그 도가 하나다. 편협함과 공손하지 않음은 군자가 추구할 바가 아니다.

박씨의 아들 제운(齊雲)은 나이 스물셋으로 문장에 능하며 호를 초정(楚亭)이라고 하는데 나에게 배운 지 몇 년이 된다. 제운은 선진(先秦), 양한(兩漢)의 글을 흠모하여 글을 짓지만 옛글의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진부한 말을 없애려고 애쓰면 혹 황당무계한 데 빠지기도 하고, 주장을 너무 높이 내세우면 혹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데 가까워지기도 한다. 명나라의 여러 문장가들이 법고와 창신을 두고 서로 옥신각신 싸웠으나 양쪽 다 올바름을 얻지 못하고 함께 말세의 하잘것 없는 데로 떨어져 도를 돕는 데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한 채 한갓 풍속을 병들게 하고 교화를 해치는 쪽으로 귀결되고 말았거늘, 나는 이 점을 두려워한다. 새것을 만들다가 공교(工巧)해지기보다는 차라리 옛것을 모범으로 삼다가 고루해지는 편이 나을 터이다.

내가 지금 '초정집'을 읽은 후 공명선과 노나라 남자의 독실한 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편 회음후와 우후가 기묘한 계책을 낸 일을 이야기했는데, 이는 모두 옛것을 배워 잘 변통한 사례들이다. 밤에 초정과 더불어 이런 말을 하고, 마침내 그것을 책머리에 써서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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