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27-1

DoM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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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처음, 수학 공부모임을 했다. 오랜만에 네시간 가까이 떠들었더니 목이 쉬고 머리 속이 울렸다. 밤에 잠을 청하기 힘들었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눈을 뜨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꿈에서는 무애, 자연, 사랑, 자애, 무위 이런 것들로 논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잠꼬대를 했던 것 같다. 누군가 있었으면 놀랐을 것이다. 눈을 뜨지 않았는데도 환해지는 걸 알겠더라. 손을 뻗어 CD를 눌렀다. 바흐다. 음악만 듣기 위해 온 정신을 소리에 집중했다. 음악이 다 끝나고는 눈을 떴다. 방은 더 밝아지고 동시에 창백해졌다. 몸에 기운이 없다. 안하던 짓을 하니까 그런가 보다. 거실로 눈을 부비며 나와 식혀놓은 국화차를 한 잔 마시고 밤에 내놓은 쑥떡을 굽고 하루를 시작한다.
  • 모기란 참 약하다. 작고 여리다. 비록 우리 피를 빨아먹고 집단적으로 달려들기 때문에 화학 약물로 죽이고 말지만. 10월이 끝나가는데 모기 한마리가 손등에 앉았다. 보다가 훅 부니 벽에 붙는다. 꾹 눌러 버리긴 좀 뭐해서 살짝 손바닥으로 눌렀는데, 정말 살짝.. 친것도 아니고 종이 한 장 대듯. 그런데 비실거리더니 죽어버린다. 아마 죽여달라고 일부러 그랬나보다. 손에 들어보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몸 어디 그런 독소가 있어서 물고 삐만 빨고 말지 그렇게 가렵게 하는 것이 있단 말이지? 지도 생존과 번식을 위해 어쩔 수 없었을 터인데. 저렇게 약하고 죽은 몸뚱이 같으니. 뒈졌으니 내세엔 니가 나로 내가 너로 태어나자.
  • 아침에 한시간 반 동안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생각하느라 보냈더니 정신이 날카로와졌는지 모른다. 마음은 달라붙은 것 처럼 가라앉고 정신은 불을 붙인 바늘처럼 빨갛게 달아 날카로왔다. 수학공부 하루 접는다.
  • 마음이 아침 물안개처럼 깔려 있어서 낮에 영화보러도 안가고 산으로도 안갔다. 대신 십오륙 년 전에 읽었더 책들을 폈다. 한가위 때 집에 가서 가져온 책이다. 두 책 모두 개인사 격동기였던 91년 경 읽은 것이다. 하나는 보들레르의 들라끄르와 평론 모음 '화가와 시인' 이고 다른 하나는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단편 모음 '이별없는 세대'다. 보들레르에 몇개월 빠져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 때 반이 잠긴 반지하가 아니라 한 쪽 면은 잠기고 반대쪽은 뚫인 창천동 반지하 집에는 방이 둘 있었다. 큰 방은 '욱'이 작은 방은 내가 썼다. 그 작은 방을 검은 페인트와 흰 페인트로 칠했다. 그리고 이젤과 도화지를 샀었다. 그림은 그리지 않았지만, 보들레르는 많이 읽었다. 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게 혹 보들레르를 통해서 였던가? 아닐 것이다. 러시아어 번역판 '악의 꽃'을 보다 말았다. 단어가 모르게 많아서 애를 먹다보니 처음 기억까지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15년 동안 한 번도 읽지 않았지만, 그 글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책을 읽을 때 충격이었다. 다시 봐도 그렇다. 내 안에 잠시 숨어들었던 지독한 놈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역시 심해어다.
  • 자전거를 타고 밤길을 달렸다. 의식을 자전거 앞바퀴에 집중하고 돌고 도는 것만 엉덩이로 느꼈다. 씨네마떼끄 부산 앞 넒은 공터는 사람도 차도 없다시피 해서 그냥 돌기만 하기 좋았다.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물었다. 결단한다고 결단 안하는 것이랑 별 다를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그 생각이 자꾸 튀어 나왔다. 몸을 바랄 것인가. 마음을 바랄 것인가. 내 던져버릴 것인가. 이 따위로 살았다가는 죽도 밥도 아닌게 될 것 같다. 멋도 없고 맛도 없고 생명도 없고 죽음도 없다. 사랑도 없고 이별도 없고 무위도 없다. 역사 앞에서 무기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무기력한 시대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란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쯤 알게 되었다. '나'는 참 별종이다. 모든 '나'는 별종이다. 그런데 사회란 언제나 표준을 만든다. 도시는 더 그렇고 대도시는 더 그렇다. 대도시는 몸팔아 산다. 하는 짓이 맨날 똑같다. 대도시는 별종들의 집단 주거지다. 조용히 들끓는다. 표준이 없어서는 안된다. 대도시는 없는게 없다. 한 순간도 같을 때가 없다. 대도시는 진공청소기처럼 다 빨아들인다. 나는 대도시에 산다. 바다에 코를 대고 있는 50층 넘는 새 건물은 아무도 안사는데 온 건물에 불을 켜 두었다. 초승달이 붉었다. 건물은 로봇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뒤로 달은 붉었다. 휜 칼이었다. 건물엔 불이 환했다. 달의 검법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그리 붉었나. 바다에 코를 댄 거대한 건물의 환한 불은 아름답지 않았다. 상상력이 없는 인공물은 아름다울 수 없다. 그것은 거대한 시장의 폭력이었다. 또는 시장의 숨죽인 거대한 폭력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데 내가 아팠다. 수영만에서 달을 보는데 붉고 붉어지더니 밤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나를 어찌할 것인가? 이 따위로 살아가야 하나?
  • 신문을 슬쩍 보았다. 돌아가는게 여전하다. 위정자들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하지만, 어떤 위정자도 세상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위정자들이 세상을 만들려고 한 결과 이렇게 치밀하게 복잡한 구멍들을 뚫어두고 세계의 모든 지혜도 그 작업에 동원되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게 되었다. 사람들이 저 아파트보다 달을 좋아했더라면 이렇게 거대한 폭력을 구조적으로 은밀하게 자행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 벌거벗은 몸뚱이에 따듯한 열이 은은히 흐르는 것 같다. 내 몸의 열은 피랑 안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제 일을 묵묵히 하고 있기 때문일테지. 한순간도 삶과 죽음이 동시에 없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를 구원하면 세계를 구원한다. 나는 한 점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점이 있기 전부터 있어왔다.
  •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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