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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석유 없는 세상으로 간다.’

스웨덴에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국가기구가 있다. 총리가 책임자인 ‘석유 독립에 관한 위원회’다. 지난해 12월 예란 페르손 당시 총리가 각계 지도자와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위촉한 뒤 스스로 위원장을 맡으며 출범한 기구다. 그로부터 반년 뒤인 지난 6월, 이 기구는 ‘스웨덴을 2020년까지 석유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석유가 인간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처럼 대담한 제안이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실제 실현될 수는 있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언론재단의 해외테마취재 프로그램에 참가해 스웨덴 현지를 돌아봤다.

30년 동안 준비한 계획=위원회가 상정하는 ‘석유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건 품질과 가격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대체 에너지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에너지청 국제사무국 사무실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조세핀 융델 국제사무국장은 “석유와 대체연료의 효율적 사용을 통해서 육상운송 부문의 석유소비를 40~50% 줄이고, 건물의 난방에 더이상 석유가 사용되지 않게 하며, 산업 부문의 석유 사용량을 25~40% 가량 줄이자는 게 석유독립위원회의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이 30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려 쏟아온 노력과 그 성과를 살펴보면 위원회의 이런 제안이 무모한 편은 아니다. 세계 각국이 에너지 소비량 증대를 국가발전의 척도로 삼고 있던 1975년, 스웨덴은 이미 수요관리로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전환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석유 한방울 나지 않은 나라로 1973~74년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석유 자원의 불안정성을 절감한 때문이었다.

스웨덴은 당시 에너지 소비증가율을 점진적으로 감소시켜 1990년까지 에너지 수요 증가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이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에너지 절약과 석유 대체 에너지원 개발, 에너지 효율화에 노력한 결과 1975년 69%이던 에너지의 석유 의존도는 1990년에 43%로 줄어든 데 이어, 2004년에는 32%까지 내려갔다.

석유 사용 감소는 무엇보다 원자력에너지 사용 확대를 통해 뒷받침됐다. 하지만 바이오 에너지와 같이 식물을 주원료로 한 재생가능 에너지의 개발과 보급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특히 건물 난방용 에너지의 석유 의존도가 30년 사이 70%나 줄어든 데는 건물 단열 개선, 지열 활용 등과 함께 바이오에너지를 이용한 지역난방의 확대가 결정적이었다.



바이오에너지에 큰 기대=스웨덴의 여러 도시 가운데 바이오 에너지 보급에 가장 적극적인 도시가 스웨덴 제2의 항구도시 예테보리다. 인구 48만여명인 이 도시에선 전체 건물의 70% 가량이 정유공장과 폐기물 소각장 등에서 나오는 폐열, 목재 등의 바이오 연료를 열원으로 한 지역난방 시스템 등을 통해 난방을 하고 있다.


예테보리 지역난방회사인 예테보리에너지의 산업정보분석 담당자 라스 홀름퀴스트는 “예테보리 지역난방의 에너지원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다”며 “석유가 필요한 때는 급격한 기온 저하로 난방과 온수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 하루이틀 정도”라고 말했다.


예테보리는 ‘바이오가스 도시’라는 민관 프로젝트를 통해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기 가장 어려운 수송 부문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계획을 차근차근 추진해오고 있다. 시 당국과 예테보리에 본사를 둔 볼보 등 기업이 협력해 진행한 ‘바이오가스 도시’ 프로젝트의 결과, 10년 전 예테보리에 단 한 대도 없었던 바이오가스 연료 자동차는 서부 스웨덴 지역을 포함해 모두 4500대로 늘어났다. 시는 바이오가스 자동차에 대해 혼잡통행료와 주차료 면제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소비자들의 구입을 유도하고 있다.

1995년 바이오가스인 메탄 연료 자동차 생산을 시작한 볼보는 지난해부터는 식물에서 추출한 에탄올 85%와 휘발유 15%를 혼합한 연료(E85)를 사용하는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볼보의 간부인 앤더스 캐베리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대체 에너지를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는 비중이 갈수록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와 시 당국, 연료생산업체 등과 협력해 변화에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융델 에너지청 국장은 “2020년까지 스웨덴을 석유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로 만든다는 목표가 하향조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목표는 기적이 아니라 작은 여러 노력들이 합쳐져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스톡홀름·예테보리(스웨덴)/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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