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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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기고 " 하늘인 생명에 밧줄을 걸겠느냐" 인용


심범섭/인서점 대표
심범섭/인서점 대표

김삿갓을 노래한 대중가요 ‘죽장의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는 새마을운동 시기를 산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시절 <눈물젖은 두만강>의 시그널 뮤직을 타고 “땅덩어리 변함없되/ 허리는 동강나고/ …… / 어찌타 북녘 땅은/ 피빛으로 물들었나” 그렇게 매일 구수한 이야기와 노래로 북녘땅을 찾아가던 ‘김삿갓 북한 방랑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군사정권에 징발된 우리의 이런 기억과는 달리 김삿갓은 이 땅의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명문장으로 순조11년 홍경래난에 항복한 조부 김익순을 탄핵하고 초시에 장원했지만, 그것이 권력을 탐한 부끄러운 짓이었음을 깨닫자 그 길로 갓을 쓰고 방랑길에 오른다. 그리고 전 생애를 고행 속에서 부끄러움과 대결했지만. 자신의 이런 고행조차 한때의 더러운 욕망을 다 씻어내지 못했다는 자책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끝내 갓을 벗지 않았으며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짊어진 채 전라도 땅에서 고단한 숨을 거두었다.

이번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로 판결 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부끄러움의 경계를 넘어 아예 악마에 이를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판사의 입에서 ‘사형’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생사람의 목에 밧줄을 걸어 목숨을 끊어놓고, 그 목숨 값으로 챙긴 권력과 영화가 과연 어떤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인가. 이 지경까지는 아니겠지만 당시 국가보안법으로 벌어진 일이 589건이나 되고 이에 관여한 법관이 492명이라고 하니, 오! 하늘이시여! 그 흉악한 국가보안법이 그 후 서른 해를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어두운 곳에서 권력과 붉은 피를 분비하면서 검찰과 경찰의 손아귀에 들려 음흉한 에너지를 쌩쌩 돌리고 있겠지.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 인혁당 재건위의 가족이라는 한 독자가 올린 글(<한겨레> 1월27일 독자기자석)을 읽으며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목이 메어 가족들과 함께 울었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새벽기도를 다녀오던 한 아낙이 언덕 위로 막 떠오른 둥근 달을 보고 “얘, 세연아! 우리 저 달님에게 소원을 빌자”고 했단다. 그 엄마의 소원은 32년 만에 풀렸으나, 면회 길에 내뱉은 “박정희는 참 나쁜 ×이다”라는 말 값으로 모진 매를 맞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법관들은 “양심의 갈등을 느꼈다” “무죄를 내리고 싶었지만…” “기억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측은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이만만 해도 그냥 어두운 역사의 한 장이 아니었겠냐고 넘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정법에 따라 재판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나, 그 중심에 서 있는 분이 이 어두운 역사의 청산작업을 ‘조작’이니 ‘정치공세’이니 ‘참 나쁜 대통령’ 따위의 말을 함에 이르러서는 그냥 어안이 벙벙하지 않은가. 권하건대 님이시여! 부모님 묘소 옆에 여막을 지으라. 그리고 몇 년 시묘살이를 하라. 그리하면 님은 물론 가신 이의 하늘도 열리고 김삿갓이 그렇게 만나고자 했던 부끄러움과도 상봉하게 될지니.

하늘이 없는 이들에게 갓을 쓰라고 하진 않겠다. 그렇다면 땅을 보아라. 사랑하는 아내의 웃는 얼굴을 보아라. 그리고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을 보아라. 형제도 있지 않으냐. 이웃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어린 자식들의 눈동자를 보아라. 손주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 보아라. 정말 따뜻하지 않으냐. 생명이 바로 하늘이지! 거기다 과연 밧줄을 걸겠느냐.

심범섭/인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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