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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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와 연인(16) / 에밀 졸라와 알프레드 드레퓌스

에밀 졸라와 알프레드 드레퓌스 원문

일찍이 생 빅토르 후고(1096~1141)는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주둥이가 노오란 미숙아’라고 갈파한 바 있다. 이로써, 이른바 지역 감정의 마음보가 얼마나 노오란 미성숙인지 단번에 드러난다. 그는 중급의 인간을 ‘모든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자’(코스모폴리탄)로 정의한 다음, 마지막으로 ‘모든 곳을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자’(이방인)를 상급의 인간으로 분류한다. 낡디 낡은 말처럼, 선구자는 늘 탕자(蕩子)이거나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다. 아울러, 흔히 철학을 ‘낯설게 하기’의 훈련으로 여기는 것과 관련지어 볼 만한 대목이다.

‘고향이 없는 자’는 누구일까? ‘피와 땅(Blut und Boden)’으로 귀속되지 않는 삶의 양식은 무엇일까? 철학하는 자의 실존적 태도로써 낯설게 살아가는 방식은 무엇일까? 아도르노에 따르면, 돌아갈 곳이 없는 자들에게 글쓰기는 반(反)고향의 고향이다. 물론 모든 철학이 ‘낯설게 하기’도 아니며, 글쓰는 자가 상급의 인간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글쓰기는 ‘독립하되 고립되지 않는 삶’의 양식을 조형하려는 이들에게 주어진 생산적인 삶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사건의 요체는 이 점에서 오히려 역설적이다; 드레퓌스 사건에 개입한 졸라의 조국과 고향은 아도르노의 말처럼 오히려 글쓰기이며, 그 글쓰기의 행위 속에서 개현하는 보편성, 세계시민성, 그리고 외부성인 것이다. 언필칭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라고 한다면, 진정한 프랑스인은 곧 프랑스의 바깥에서 프랑스를 되돌아/굽어 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의 펜은 명쾌하고 진득하게 증명한다. 그는 프랑스적 이념을 들먹이면서도 내내 프랑스의 바깥에서 사유하는데, 바로 그것이 글쓰기의 본령이며 지식인의 조건이다.

장 칼라스 사건의 부당함을 항의하기 위해 <관용론>을 쓰고 법정 나들이를 불사했던 볼테르처럼, 졸라 역시 드레퓌스라는 낯선 타인의 인권과 진실을 글쓰기라는 보편성의 프리즘을 통해 풀어놓았던 것.

김영민 / 전주한일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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