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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최근 진보논쟁서 정치·민생과 직결된 남북문제 누락”

교수와의 인터뷰 는 2월28일 한겨레신문사 7층 편집국에서 이뤄졌다. 박찬수 정치팀장

최근 진보진영 안에서 ‘진보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최근 일고 있는 진보 논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학계가 대체로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고 외국의 이론이나 들먹이기 좋아하는 풍조가 강한 마당에 이 정도의 논쟁 벌어진 것도 다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진보논쟁이라는 것도 더 진보하고 진화할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에요. ... 공통적으로 누락된 것이 남북관계라든가 한반도평화 문제예요. 참여정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그 문제를 다뤄야 할 건데말이에요. ... 한반도평화는 절박한 정치문제인 동시에 경제문제고 민생문제와도 직결됩니다. 한반도 긴장이 어느 수준이냐 하는 것하고 우리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느냐, 우리 사회에서 민주세력과 수구세력 사이의 세력균형이 어떻게 바뀌느냐 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든요.

... 그 문제를 빼고서 논쟁이 그냥 지속된다면 몇몇 학자가 떠들다가 사그라들게 마련이에요. 그렇지 않으려면 논쟁의 과정에서 본인들이 직접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거나 아니면 제4, 제5의 논객이 가세해서 차원을 높여나가는 그런 과정이 필요했는데, 학계 내에서 그런 진전이 있기 전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을 하는 바람에 판도가 달라졌죠.

이 문제가 애초엔 학자들 간의 논쟁이었는데 대통령이 끼어들면서 정치·사회적인 논쟁으로 확산됐습니다. 대통령의 논쟁개입이 적절했다고 보십니까?

=논의가 사그라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는 확실하게 공헌한 셈이지요... 그럴 수는 있는데, 어쨌든 이제까지는 학술논쟁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끼어드는 게 모양새가 안 좋았고, 또 하나는 이게 사실 대통령께서 직접 뛰어들 만한 수준에 도달한 논쟁이었는가에 대해 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진보논쟁이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고, 그 평가가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무조건 ‘실패했다’고 규정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진보논쟁에 참여한 한 계기인 것 같습니다. 이제 꼭 참여정부 4년이 지났는데,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보십니까?

=참여정부가 잘못한 일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난 참여정부가 실패했냐 안했냐는 식으로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가 편향된 논의구도라고 봐요. ... 보수진영이 꼭 좋아하는 논의구도를 미리 설정해놓은 상태에서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말려들거나 심지어 조장하는 판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보진영에서는 ‘참여정부 때문에 욕먹고 있다, 진보 전체가 무능력하다고 매도되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반면에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가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항상 비판만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쪽의 시각 차가 큰 거 같은데, 진보진영과 진보적인 기치를 내건 정부의 관계설정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진보진영이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뭐가 진보진영이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개혁세력이라는 말을 쓰면서 그게 곧 진보라는 전제를 깔기도 하고, 진보개혁세력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개혁은 개혁이고 진보는 진보라는 주장도 있어요. 우선 그런 것부터 정리를 해가면서 논의를 해야지요. 나 자신은 흔히 진보학계의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그리고 그게 아주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겠습니다만, 극단적인 진보하고 개혁세력을 분명히 가르는 데는 반대하고요.

또 하나는 철저한 진보를 외치는 쪽에서 잘 말하지 않는 일종의 치부가 있는데, .... 헤게모니가 걸리면 비타협적으로 싸우기 일쑤고 아무튼 전혀 융합이 안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온건진보라고 할까 중도적인 개혁세력을 떨어내고, 남은 진보세력에서도 각 정파의 상이한 기준에 따라서 절반을 다시 떨어내면 그야말로 극소수밖에 안 남죠. 철저한 진보를 말할 때 숨겨진 함정 같은 것인데, 아직 그게 솔직하게 토론이 안되고 있다고 봐요. 나 자신은 ‘변혁적 중도주의’를 얘기하면서 그것이 곧 이 시대의 진정한 진보라는 주장이기 때문에, 진보를 그냥 내세우는 사람과는 입장을 달리하죠.

‘변혁적 중도주의’가 어떤 개념인지 설명을 해주시죠. 요즘 중도 개념이 너무 많은데….

=정치권에서는 집토끼를 확보해놓고 산토끼까지 잡으려고 하면 중간지대로 진출해야 하니까 너도나도 중도를 외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애당초 없다고 생각하면 극단적인 진보노선을 내세울 수도 있지만, 현실권력을 잡겠다는 사람들은 중도를 표방하게 돼죠. 내가 말하는 변혁적 중도주의가 그런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변혁’이라는 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개념을 전제로 진정한 중도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이죠. 우리 시대 최대의 변혁과제는 한반도 분단체제의 변혁입니다. 그건 통일지상주의와는 달라요. 통일을 하되 제대로 해서 한반도에 진정한 선진사회를 만드는 통일, 현재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그보다 나은 체제를 건설한다는 개념이지요.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변혁과제인데, 한반도의 현실에서는 그런 과제가 전쟁을 통해 달성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다른 어떤 혁명적 극단적 방법으로 안되고, 한반도 특유의 방식으로 점진적, 단계적으로 진행하면서 그때그때 남쪽 사회에서 필요한 개혁과 남북의 통합과정을 연계시키는 폭넓은 연대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도주의가 나온 겁니다.

이런 변혁적 중도주의는 길게 볼 때는 남북을 통틀어서 다수의 입장이 되기를 겨냥하고 있지만, 현재 정치판에서 변혁적 중도주의를 지지하거나 이해하는 사람들이 다수파가 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지요. 물론 지지하는 사람을 늘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지만, 당장에 여기서 표가 많이 나온다기보다 쓸데없이 분열하는 논리에 대항하는 의미가 더 크지요. 아무튼 득표전략으로서의 중간노선과는 성격을 달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유연한 진보’라고 하면서, 기존 진보 세력을 ‘교조적 진보’라고 표현했습니다. ‘변혁적 중도’는 ‘유연한 진보’와 통하는 개념입니까?

=‘유연한 진보’는 일종의 정치적 수사 아니겠어요? 구체적인 내용은 그때그때 맥락에 따라서 결정될 텐데, 우리나라에 교조적 진보가 분명히 있죠. 또 노무현 대통령이나 참여정부보다 보수적인 집단이 분명히 있고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여정부는 교조적 진보보다는 유연하고, 보수세력보다는 진보적이다, 이런 주장은 얼마든지 가능한데, 사안별로 그게 맞는 대목도 있고 안 맞는 대목도 있습니다. 가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정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을 대통령은 교조적 진보라고 봤는데, 나는 적어도 이 경우에 한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진영하고 죽이 잘 맞아서 가고 있다고 믿어요. 물론 반대하는 사람 중에 교조적인 진보주의자도 있지만, 미국하고의 단순한 무역협정을 넘어서서 여러 면에서 제도적 통합, 경제통합에 가까운 협정을 맺으면서 이렇게 졸속으로 할 수 있느냐, 미국의 일정에 맞춰서 그걸 ‘빅딜’식으로 서둘러 해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조차 교조적 진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잘하는 일에 대해서도 보수언론이 사사건건 문제삼는 실정인데 유독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해서는 전혀 안 그런단 말이죠. 내가 노 대통령이라면 이거 뭔가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아닌가, 내가 어떻게 하고 있으면 저 친구들이 나를 칭찬을 할까, 이렇게 한번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라고 봐요(웃음).

노 대통령은 진보세력의 가장 경직된 부분 중 하나가 개방에 대한 시각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한미 에프티에이 논쟁을 구한말의 ‘쇄국주의 대 개방’에 비유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지요. 한국시장은 이미 80~90%가 개방된 상태이고, 이것을 개방 이전으로 되돌리자고 하는 사람은 있더라도 극소수일 겁니다. 그런데 한미 에프티에이를 지금처럼 추진해서는 관세장벽만 허무는 것이 아니고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공공정책이나 산업정책, 남북통합 과정에서의 독자적인 국가정책마저 그 여지를 없애기 쉬운 그런 식의 경제통합이니까 훨씬 신중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걸 쇄국주의라고 보는 것은 전혀 타당치 않지요.

진보 시각에서 보면, 통일외교 분야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잘해왔다고 평가하십니까?

=굳이 ‘진보 시각’이라는 토를 달 것 없이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크게 봐서 그래도 옳은 방향으로 해왔다고 인정해야죠.


꼭 노 대통령 글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진보진영이 위기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실제 위기라고 보시는지, 위기라면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진보진영이 누구냐에 따라서 위기인 사람도 있고, 재밌게 잘 사는 사람도 있고 또 위기이더라도 어떤 위기이냐가 달라지게 마련이죠. 욕먹을 이야긴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지식인, 학자들의 상당수가 말로는 위기를 논하지만 사실은 87년 이래의 민주화가 가져온 공간 속에서 상당히 즐겁게 살고 있다고 봐요. 이 공간에서 위기를 말하고 정부를 비판하고 하는 것이 요즈음 지식인에게는 참 남는 장사거든요. 87년까지 우리가 정말 얼마나 피어린 투쟁을 해야 했고, 87년 이후의 20년도 저절로 된 것이 아니잖습니까. 나만 하더라도 87년 이후에도 불려가고 잡혀가고 제재를 받았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특혜를 받고 편하게 산 사람 중에 하나예요.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자유를 누리기까지의 처절한 우리 역사의 과정을 얼마나 몸으로 느끼면서 얘기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른바 87년체제를 비판하면서도 실제로는 87년체제에 배부른 게 아닌가, 민주주의에 대한 헝그리 정신이 과연 얼마나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을 때가 있어요.

진보진영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치열한 태도가 무뎌졌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진보진영이라고 자꾸 단순화하지 맙시다.(웃음) 또 안주하는 방식도 여러가지라고 봅니다. 양극화문제 같은 것을 계속 제기하더라도 이것이 분단체제 현실과 어떻게 고약하게 얽혀있는가 고민하면서 구체적으로 타개할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문제도 있고, 다른 쪽에서는 이게 모두 분단 때문이니까 통일해야겠다고 부르짖으면서 관성적인 통일운동에 안주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현상들이 사회 도처에 있어요.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역동성이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어요. 87년 이전과 이후의 역사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큰 잠재력을 지녔다고 봐요. 이럴 때 지식인들이 나서서 정말 슬기롭게 그 역동성을 살릴 길을 찾는 게 중요한데, 너무 거룩한 말씀들만 주고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거예요.

지식인 집단은 아니지만, 87년 민주화 체제의 산물로 전교조나 민주노총 등 사회세력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국민 지지를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조직 이기주의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직 내부에서도 그런 비판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니까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봐야겠죠.

올해 12월 대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 민주화세력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선생님 의견을 말씀해주시죠.

=거기에 대해서는 지금 특별한 의견이 없어요. 지금 대선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표현이 ‘진보진영’에서 ‘민주화세력’으로 가는데(웃음), 여기에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대표적인 예가 손호철 교수죠. 손호철 교수의 경우에는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을 하더라도 그가 생각하는 진보진영을 위해서는 나쁜 일이 아니라는 쪽으로 이미 생각이 정리된 것 같고, 최장집 교수는 결과적으로 손호철 교수와 상당히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딱히 그렇게는 말하지 않고 누가 물으면 ‘원론적인 얘기한 것뿐이지, 그건 아니라’고 할 것 같아요, 내 짐작에. 조희연 교수는 두 사람과 다른 입장인데, 그러나 개혁세력의 대동단결이라든가 이런 얘기는 잘 안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뭔가 덜 진보주의적으로 보일까봐 망설이는 기색도 있더군요, 내가 볼 때에는. 나는 뭐 지금 손호철 교수 같은 사람은 그들대로 진보논리를 펼치고 ‘미래구상’은 ‘미래구상’대로 움직이고, 최근에 ‘번영과 통합을 위한 국민운동’이라는 집단도 출범을 했는데 거기는 거기대로 하고, 각자가 나와서 활동하다보면, 이게 대선국면이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는 현실논리에 따라서 정리가 되게 마련이라고 봐요. 그때 가서 국민이 선택하고 심판하면 되지, 지금부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보수진영 일부에선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간을 ‘잃어버린 10년’, 그러니까 그 기간 동안 나라가 무너졌다는 시각이 강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이 후퇴했다는 일부 보수진영의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가 여기저기 들여다보면 엉망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어떻게 보면 아직도 우리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구도보다는 ‘상식’과 ‘몰상식’의 대립으로 분류해야할 정도로 엉망인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10년을 잃어버려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은 그러면 10년 전, 아니면 20년 전의 이 나라는 엉망이 아니었느냐…. 나는 박정희 정권 18년도 ‘잃어버린 18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을 정상국가로 설정해놓고 그때에 비해 나라가 엉망이 됐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죠.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조선왕조가 500년 넘어 지속된 끝에 그야말로 엉망이 돼서 일제 식민지가 되었고 다른 민족의 종살이를 했지요. 1945년에 해방이 됐지만 곧바로 분단이 돼서 분단민족으로 살아왔고, 독재에 시달렸고, 이거를 그래도 조금씩 헤쳐내면서, 많은 사람이 죽고 피흘리면서 여기까지 왔단 말이에요. 엉망인 건 엉망인 걸로 솔직히 인정하되, 그것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한나라당이라면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게 맞고, 민주노동당밖에 도저히 없다면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집권 못하더라도 거기다 힘실어주자라고 주장하면 되고, 둘다 내키지 않는 대안이라면, 지금 비록 지리멸렬하지만 폭넓은 민주화세력이 대오를 정비해서 개혁작업을 계속하는 게 좋다면 어디 한번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가 지켜보면 되는 것이지, 개인적으로 거기에 미리부터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뉴라이트 담론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현대사 교과서 파문도 있었는데요, 뉴라이트가 나오는 게 합리적 보수 형성에 기여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새로운 수구세력의 외피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기존 보수보다 오른쪽으로 간 그런 극단적인 수구일 수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최근 뉴라이트 흐름을 한번 평가해 주시죠.

=‘뉴라이트 운동’이라는 게 시작된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하나는 옛날의 우익세력은 담론투쟁이라는 게 필요없었어요. 마음에 안 드는 놈 그냥 잡아가면 되는 거였고, 돈이나 관직을 줘서 해결하기도 쉬웠어요. 그런데 세월이 바뀌어서 담론투쟁을 우익에서 하겠다고 나선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이라 봐야죠. 지금 뉴라이트 운동이 시민운동으로서 튼튼하다고 보진 않지만은, 어쨌든 시민운동 하겠다는 건 진전이에요. 그러나 뉴라이트 담론의 내용이 얼마나 새로운지는 아직 회의적입니다.

가령 유럽이나 미국에서 60년대에 ‘뉴레프트 운동’이 나왔을 때 뉴레프트가 가장 치열하게 싸운 것은 라이트보다 오히려 올드레프트와의 논쟁이고 투쟁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뉴라이트가 올드라이트와 그런 식의 치열한 담론투쟁을 보여주느냐, 물론 다소의 견해차는 있지만 그 정도는 뉴라이트 내부에서도 있는 것이어서 대단한 게 못돼요. 뉴라이트가 올드라이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단적인 예가, 맘에 안 드는 아무나 친북좌파로 몰아가는 태도지요. 물론 이 나라에 친북좌파가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친북좌파도 있고 반북좌파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친북우파도 있잖아요. 고 정주영 회장 같은 사람은 좌파일 리는 없고, 굳이 말한다면 상당부분 친북적인, 북에 우호적인 친북우파였지요. 이런 점을 가려가면서 친북좌파는 친북좌파로 비판하고, 반북좌파는 반북좌파로 비판하면서 그런 분간을 못하는 구우익을 상대로 좀 맹렬하게 다툴 건 다퉈야하는데 아직 그 단계까진 안간 것 같아요.

며칠 전 선생님의 라디오 인터뷰 들으니까, “참여정부의 스타일과 정책실패를 구별해서 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던데요, 참여정부의 책임 중 정책실패 부분도 있고, 통치스타일 부분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죠. 대통령의 어법이나 행동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랄까, 그런 게 있지요. 그런데 정책실패와 통치스타일 외에 보수적인 거대야당이나 거대언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거야말로 너무나 지당한 말씀 아닌가요.(웃음)

정책실패는 한-미 FTA 추진 등 양극화를 막지 못한 것 같은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양극화라는 게 참여정부의 전적인 책임으로 미루는 것은 온당치 않지만, 어쨌든 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듯이 이렇게까지 진행되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이 분명히 있지요. 그런데 이 경우에도 거대야당과 거대언론에도 책임이 있는 게, 부동산정책이라든가 분배정책 해보려고 하면 언제 뭐 협조한 적이 있습니까. 협조를 안한 정도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가로막기 일쑤였지요. 부동산 정책이라는 것도 성공하려면 심리적 요인이 상당히 중요한데 정부가 잘 못해서 신뢰를 잃은 면도 있지만, 덮어놓고 안될 것이라는 식으로 미리 몰고간 경우도 많지요. 정부가 잘될 거라고 그랬다가 틀린 적도 있지만 보수언론에서 안될 거라고 예언했다가 안 맞은 면도 있잖아요. 그래도 되는 방향으로 밀어줬다가 안됐을 때 가열차게 비판하는 것은 몰라도, 처음부터 심지어 되는 것조차 안되는 것으로 비판했으면 나중에 양심에 거리끼는 기색이라도 보일 법한데…. 이런 것도 우리 사회가 엉망인 한 면이 아닐까요.

정책 자체의 실패, 어법과 행동 등에서 참여정부가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것도 있는데, 진보개혁 세력이 적극적으로 노무현 정부를 안 도와준 측면도 있다고 보십니까?

=분명히 야당에 속하는 진보정당이라든가 또는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본업으로 하는 시민단체가 직접 나서서 도와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죠. 다른 한편으로 비판을 하더라도 좀 실상을 알고 물정을 알아가면서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실제 국정경험과 정치현장의 경험이 있거나 실물경제를 만져본 사람이라면 진보·보수에 관계없이 충분히 할 법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 임기가 1년 남았습니다.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양극화를 어떻게든 완화시키고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추세를 견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나는 해야 할 일보다는 하지 말아야할 일 한가지를 먼저 꼽고 싶군요. 대통령이 한-미 FTA가 양극화를 악화시킨다는 근거를 알지 못한다고 하지만, 거기에 대해 많은 학자들의 견해가 제출이 돼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반드시 맞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그런 견해를 충분히 감안해서 사안별로 검토하고 그럴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지를 충분히 고려해가면서 진행한다면 3월말, 4월초 일정에 맞춰서 후다닥 ‘빅딜’을 해서는 안되는 게 분명하지요. 졸속은 피하고 남은 임기 동안 협상을 계속하면서 신중히 대처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남북관계는 대체로 옳은 방향으로 해왔다고 그랬는데, 물론 이 정권의 준비부족으로 김대중 대통령 때보다 못한 점도 있지만 처음부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강경책을 밀고 나가는 상황이었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하고 이런 장애요인도 있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 겪으면서 2007년에 희망적인 국면까지 왔으니까, 마지막 1년 동안 그 방면에 더 많은 진전을 이룩하기를 바랍니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세력은 노무현 정권과 결별하고 따로 가야 한다”고 말했고, 함세웅 신부는 “비판할 건 비판하더라도 끝까지 잘하도록 도와줄 건 도와줘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쪽이십니까?

=최 교수의 그 말의 정확한 의미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민주화 세력이 과연 누구며 ‘결별’이라는 걸 어떻게 하는 건지…. 한나라당 집권을 예상하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말자는 이야기라면 무슨 이야긴지는 분명한데 최 교수는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하고요.

얼마 전에 내가 최장집 교수에 대해 ‘자신은 원론적인 얘기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원론만으로 안 받아들여지는 현실에 대해서도 숙고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공개적으로 충고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적으로 최장집 교수를 아끼는 마음의 표현이었지요. 그런데 최근 며칠 사이 계속 언론에 이 문제가 확산되고 최 교수의 발언들이 부각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조금 각도를 달리해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최장집 현상’이라는 것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최 교수의 학설이나 발언뿐 아니라 그것을 언론이 다루는 방식이라든가, 진보학계에서 반응하는 방식 등이 다 포함되는데, 난 언론에 대해 불만이 많아요.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한겨레>도, 단순논리를 펼치면서 정부나 개혁세력을 꾸짖는 지식인의 발언을 굉장히 선호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어요.

최 교수 이야기가 사실은 한두 번 들은 이야기도 아니잖아요. 민주주의라는 게 독재헌법이 민주헌법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다 되는 게 아니고, 서민생활 향상시켜야 한다, 정당정치 제대로 해야 한다, 관료사회 잘 통제해야 한다, 뭐 다 지당한 말씀 아닙니까. 최근 논쟁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평화문제에 대해서도 통일을 얘기하면 평화에 위협이 되니까 평화 얘기만 하자는 게 최 교수의 입장인데, 내가 원래 그를 비판한 것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였어요. 왜 평화담론이냐 통일담론이냐, 이렇게 이분법으로 갈라서 생각을 하는가, 한반도라는 데는 섣불리 통일을 주장해도 평화가 위협받지만, 한반도식의 통합과정을 진전시키지 않아도 평화정착이 안 되는 곳이니까 단순논리를 넘어서자고 한 것이었지요. 조희연 교수 역시 정당정치냐 사회운동이냐 이렇게 딱 갈라놓는 이분법을 비판했다고 생각하는데, 최 교수는 사회운동만 다시 하자는 건 과거의 타성이라거니, 지금은 통일을 말할 때가 아니라 평화를 말할 때라는 식의 얘기를 되풀이하고 있어요.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실명비판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최 교수는 남이 실명비판을 해도 결코 실명으로 답하지 않고, 대신에 측근이나 지인이 나서서, “사실 이번에 최 교수가 쓴 글 중 어느 대목은 아무개에 대한 답변에 해당한다”라고 언론에 귀띔해주면 기자가 열심히 받아적곤 하지요. 그런 방식을 노무현 대통령이 좀 배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노 대통령의 어법이나 행동, 그것도 국민들이 현 정부 싫어하는 요인 중의 하나인데, 좀 고치라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그런 얘기는 없었습니까?

=나는 아니지만 그런 얘기를 완곡하게 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러나 대통령은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그게 내 체질인데 어떻게 하냐는 태도인 것 같아요. 또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예전에는 많다가 지금은 대폭 줄어들었지만, 대통령은 줄어들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인 모양이니까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지난 2년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 말씀해주시죠.

=6·15공동위원회는 남북의 당국간에 대화가 단절됐던 시점에 출범해서 그것을 복원하고 2005년의 여러 성과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은 2005년에 비해 훨씬 어려웠는데, 북의 수해 피해자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고 6·15공동위원회 차원의 대화의 끈을 유지함으로써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 데 공헌했다고 보고요. 또,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는 아니지만 6·15 남측위원회 내부사정이 굉장히 복잡했었습니다. 처음 제가 맡았을 때만 해도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심각한 위기도 더러 있었지요. 그런 것을 넘기면서 이제는 우리 내부의 남남갈등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고 적어도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점도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6월 행사를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했으면 구체적인 실무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앞으로 어려움은 어떤 게 있을까요?

=6월 행사를 여는 일 자체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봅니다. 평양에서도 해봤고 광주에서도 해봤고, 또 지금 전체적으로 작년 후반기에 비해 상황이 좋으니까 사태가 급전직하로 나빠져서 북에서 2차 핵실험을 하고 국제적인 제재가 강화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돌변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얼마나 뜻있는 성과를 내느냐 하는 것은 지켜볼 일이지요. 베이징 6자회담에서의 2·13 합의가 가령 94년의 제네바 합의와 비교해서 진전된 점이 크게 두 가지라고 보는데요, 하나는 미국이건 북한이건 한번 갈 데까지 가본 뒤에 대화로 해결하기로 마음을 돌려먹었다는 점이 그 전과 다르지요, 북은 핵실험까지 했고, 미국은 2000년 말에 클린턴 행정부가 해결의 가닥을 잡아놓은 걸 부시 행정부가 뒤집고 여러 해 동안 북을 압박하다가 이제 드디어 정책전환을 했지요. 또 하나 과거와 다른 점은 이번 합의는 구체적인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있지 않습니까. 이행조처에 대한 시한들이 박혀 있기 때문에 건축공사로 치면 ‘기성고’ 즉 시공이 진행된 수준에 따라서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에요. 지금부터 6월 사이에 굉장히 많은 것이 진행되기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가 되는지 안되는지를 그때그때 확인할 수 있어요.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훨씬 희망적인 상황이라 봅니다. 지금부터 6월 사이에 합의된 조처들이 이행된다면 이번 6·15행사는 2005년에 못지 않은 의미있는 사건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죠.

=글쎄요. 대강 다 말씀드린 것 같긴 한데요. 올해 대선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번에 진보논쟁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서 이런 논의가 시작된 것을 계기로 적어도 학계나 공론장에서 정말 우리 사회에서 ‘참 진보’는 뭐며, 87년 이후 20년이 된 시점에서 다음 단계를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건가, 그런 것을 조금 더 깊이있게 논의하고 다소나마 의견접근이 일어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걸 얘기할 때에는 우리가 남북관계 문제와 남한사회 내부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생각하면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데요, 학계에서도 그런 노력이 더 있었으면 합니다.

소위 진보진영의 많은 논자들이 남북문제를 빼고 애기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그것은 그동안 통일담론을 적극적으로 펼쳐온 쪽의 책임도 있어요. 일반 국민이나 다른 사람이 볼 때 현실성도 부족한 통일노선을 가지고 외쳐대니까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거니 하고 외면하거나, 심지어 공감하는 사람일지라도 통일은 극단적이고 용감무쌍한 투사가 하는 일이지 우리는 감히 못해볼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당연히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런 걸 취급 안하려고 하고, 그러다보니 진보적인 지식인들일수록 ‘후천성 분단인식 결핍증’에 걸린 경우가 많아진 것 같아요. 분단체제 속에 오래 살면서 거기에 길들여진 거지요. 최근의 논의가 이런 증상을 치유해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데, 남북관계가 진전이 되면 될수록 좋든 싫든 남북문제와 국내문제가 직결돼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거라고 봅니다. 올해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될 거냐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의 현실인식 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질 기회라고 봅니다.

정리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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