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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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이 19세기까지 루브르나 대만 고궁박물원등에 뒤지지 않는 미술품 컬렉션을 대규모로 운영해온 실상이 밝혀졌다.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작가의 그림과 글씨(서화) 등 최소 5만여점을 수집, 관리해온 내력이 공개된 것이다.

7일 미술사 연구자 황정연 박사는 학위 논문(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시대 서화수장 연구>를 통해 조선왕실 컬렉션의 성장, 쇠퇴 과정을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서울대 규장각,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남아있는 왕실 서화 소장목록(서목) 500여개를 분석했다. 논문을 보면 방대한 컬렉션 작업은 16세기 연산군 때부터 이뤄졌다. 연산군은 수시로 화가, 조각공을 도화서에 불러들였으며, 화원들이 일하는 내화청을 신설해 그림을 대규모로 모았다. 중종은 명나라 황제 그림을 수집 감상했으며, 선조는 어필, 어화 컬렉션을 본격화했다. 17~18세기 숙종, 영정조 시기에는 임진왜란 때 불탄 컬렉션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에 흘러들어간 역대 선왕의 글씨와 그림을 되찾는 정책적 노력이 나타났다. 저자는 영조의 수장품 목록 <일한재서목>을 처음 공개하고, 선왕 어필과 윤두서, 이명욱, 안평대군, 이수장의 글씨와 그림 56점을 논문에 소개했다.

컬렉션은 왕조 말기인 19세기 헌종과 고종 때 더욱 커졌다. 헌종은 거처인 창덕궁 구내 승화루를 일종의 왕립미술관으로 활용하면서 수천점의 서화를 수집했다. 고종도 경복궁 집경당에 다수의 전적과 서화를 수장했다. 황 박사는 “884점에 이르는 승화루 서목을 보면 추사, 단원, 겸재 등의 유명 화원 외에 북송대 휘종 황제를 비롯해 당인, 문징명, 심주, 대진, 감영 등 명·청나라 대표작가들의 그림, 일본 무명 작가들의 그림까지 고루 수집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제가 구한말 소장품을 분산시키면서 왕실 컬렉션 가운데 90% 가까이가 사라진 점이다. 통감부가 1908년 제실도서관을 설립하면서 규장각 도서과를 신설해 궁중 각 전각 전적, 서화를 모아 목록을 작성했으나 당시 승화루, 집경당 수장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황박사는 “누군가가 집단유출한 것이 분명하다”며 “서화 추적과 복원 등 규명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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