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008

DoM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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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치료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소녀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소 녀의 정체(?)가 만약 궁금하다면 올 가을 핀란드에서 출간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소녀(Maailman ihanin tytto, 영어 제목은 The Loveliest Girl In The World)>라는 사진집을 펼쳐보자.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탐스러운 적갈색 곱슬머리를 내려뜨리고 깊은 상념에 빠진 듯 시선을 아래로 드리운 소녀가 바로 그녀일까? 호기심으로 책장을 하나씩 넘기니 여러 다른 소녀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하나같이 요정 같은 옷을 입고 지나치게 아름다워 초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자연을 배경으로 고즈넉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처 음에는 그저 '사진작가가 예쁜 아이들을 모아다가 사진을 찍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읽어보니 이들은 고아원에서 자라난(혹은 현재도 자라고 있는) 아이들로 사진작가는 예술을 위한 작품을 찍은 것이 아니라 '치료'를 목적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한다. 미술치료 음악치료는 많이 들어봤지만 사진치료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어서 뒷조사(?)를 좀 더 해보기로 했다.

이 사진집의 작가 미나 사보라이넨(Miina Savolainen)씨는 사진작가가 되기 전, 핀란드의 한 고아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항상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어릴 때 버려져 큰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자신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고 아원 아이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데 '말'은 큰 힘이 없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미 어른들의 무수한 약속과 사탕발린 말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 외의 다른 소통의 매개체를 찾고 있던 사보라이넨씨는 취미로 즐기던 사진 찍기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사진과 사진 찍는 것에 항상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대대로 사진 찍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할 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찍은 사진부터 많은 가족사진이 아직까지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 이런 가족사진들을 보며 혼자서 많은 상상을 했었습니다. 사진 속의 부부는 정말 사랑했을까, 사진 속의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이였을까 등등.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엿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다가가기 힘들었던 아이들의 아픔도, 사진을 통해서라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디어는 곧바로 실천에 옮겨졌다. 사진 촬영 방법은 독특했다. 찍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델이 주도권을 가지고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의상과 배경도 협의를 통해 결정됐다. 의상과 배경을 선택할 때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아이들의 현재 환경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 속 의상과 배경은 '완전' 혹은 '완벽'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사보라이넨씨는 아이들이 사진 속의 자신을 보며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임을 알게 되기를 바랐다. 부모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못했지만, 그러기에 스스로 더욱 자신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저도 카메라 앞에서 모델이 되는 때가 많았습니다. 쌍방향 촬영이 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누가 누구를 찍어주는 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북돋아주는 살가운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보라이넨씨는 아이들과 함께 핀란드의 아름다운 숲과 호숫가를 거닐며 많은 사진을 찍고 또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핀란드에서 가장 추운 북쪽지방에서는 심한 혹한 때문에 눈물을 참으며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이런 경험은 모든 이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자연을 배경으로 인공광을 배제하고 자연광만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된 사진 작업을 통해서 '신뢰'와 '회복'이라는 낯선 단어가 어느새 조용히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사 보라이넨씨는 사진에 찍힌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세상에서 제일가는 딸, 아들, 배우자가 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제일가는 그 무엇이 되려할 때 사진 찍기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사진을 찍으며, 혹은 찍은 사진을 보며 우리는 미처 몰랐던 우리,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카메라를 주고 엄마가 가장 멋져 보이는 순간을 찍어오라는 임무를 부여하면 예상외의 놀라운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단다. 그 놀라움은 단지 임무를 부여한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어머니와 또 사진을 찍은 본인인 아이에게도 해당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아이는 엄마를 다시 보며, 결국은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한 번도 아빠 무릎에 앉아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아빠 무릎에 앉아있는 사진을 찍어오라고 부탁할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보통 기쁜 일이 생길 경우에만 사진을 많이 찍지만, 사보라이넨씨는 이혼 혹은 질병 등으로 가족이 어려움에 처해있는 경우에도 사진을 찍을 것을 권한다. 후에 이런 사진을 보면서 스스로 복잡했던 감정선이 정리되며 회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은 보통 사진을 찍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아픈 사람과 같이 사진을 찍어보세요. 아픈 분에게 당신과 사진을 같이 찍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말하면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할 것입니다."

사보라이넨씨는 사진 찍기, 사진 보기, 사진을 앨범에 정리하는 모든 과정이 다 치료의 과정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요즘에는 또 자신의 사진을 마주 대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요. TV와 잡지에서 매일 예쁜 선남선녀들만을 대하다가 갑자기 불완전해만 보이는 자신을 대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이렇게 미추의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좀 더 깊게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나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며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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