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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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만난 학교

브라질 북부 벨렝, 이코아라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시간 가면 코티주바라는 섬이 나온다. 거기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나무로 만든 학교는 작고 아담하다. 교실은 몇 학년 몇 반이라는 숫자 대신 반 이름이 있다. 이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 이름이다. 열대종려나무로 목재로 쓰거나 열매를 먹는 투쿠망, 타페레바, 피퀴아, 아싸이, 부리치, 망고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햇볕과 바람, 비를 맞으며 파란 하늘을 향해 자라나 열매 맺는 나무들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나라는 의미로 지었지 싶다.

두 해 전, 체육선생인 후이가 어린이들과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바닷가로 바깥수업을 하러 가는 길에 그 나무들이 서 있었다. 후이가 “무슨 나무지?” 하고 물으면 아이들이 이름을 말했다. 자기 땅에서 자라는 나무를 두고 이야기 나누는 선생과 아이들을 보면서 이자 계산을 하는 수학 문제가 나왔던 수학책과 문제집이 생각났다. 원금과 이율, 이자라는 낱말은 초등학생만 아니라 고등학생한테도 너무 딱딱한 말 아닌가. 푸른 건 모두 나무이고, 날아다니는 건 모두 새이고, 높은 건 산이라고밖에 모르는 나는 부끄러웠다. 배울 건 종이책에만 있지 않았다.

걷는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든 선생님 손을 잡으려고 난리가 났다. 손은 두 개이니 두 아이밖에 잡지 못할 터, 아이들은 선생님 손가락을 한 개씩 나눠 잡았다. 선생님이야 손가락이 찢어지든 말든. 손가락을 못 잡은 아이들은 앞뒤로 선생님 옷자락을 잡았다. 그마저도 못 잡은 아이들은 선생님 손가락이나 옷을 잡은 친구 손을 잡았다. 후이는 아이들 손을 떼어놓지도 않았고, 좀 떨어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더디더라도 그렇게 함께 바닷가로 걸어갔다.

바닷가에 가서 후이는 아이들이 태어난 코티주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모래바닥에 털썩 앉거나 누워 나뭇가지나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 뒤, 선생님을 불렀다. 아이들 그림 앞에서 그 큰 남자 선생님 후이는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감탄했다. 어느 그림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예쁘다” “놀랍다”고 말해주고,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사랑이라고, 친구라고, 집이라고, 나무라고 대답했다. 대답하는 아이들은 자기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 아이 몇이 앞서 달려갔다. 후이는 혼자, 먼저, 앞서, 달려가는 아이들을 불렀다. 그 자리에 멈추어 친구들을 기다리라고. 그래도 달려가는 아이한테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툭 터진 길에는 다니는 차도 없어 위험할 일도 없었다. 후이는 한번도 아이들에게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도 않았고, 줄 세워 걷게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위험을 예방하거나,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멈추라고 한 게 아니다. 그럼, 후이는 왜 앞서 달리는 아이들한테 멈추라고, 기다리라고 했을까. 먼저 달려간 아이와 뒤에서 함께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후이가 왜 그랬는지 알았다. 후이는 학생들에게 혼자 앞서 달려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천천히 함께 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가르쳤던 거다. 힘들거나 발걸음이 느려 뒤로 처지는 친구를 기다리고, 땅에 닿는 발걸음, 뺨에 와 닿는 햇살 하나하나 함께 느끼면서 걷는 게 중요하다고. 아이들이 웃고 이야기하며 함께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모습을 보았다. 혼자 앞서가야 살아남는 거라고 가르치는 한국 교육이 떠올랐다. 대체 앞서가면 무엇이 나오기에?

학교는 먼저 온 아이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학교에는 아주 낮은 나무문이 있는데 문 안쪽에 서 있던 경비 선생님은 한참 뒤 후이와 아이들이 모두 함께 도착한 다음에야 딸깍, 문을 열어주었다.

기사 원문 : 박수정/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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